동백 아가씨와 아가씨 동백
동백 아가씨와 아가씨 동백
  • 경남일보
  • 승인 2020.08.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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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는 1964년에 발표되었던 일종의 트로트 곡이다. 작곡자는 백영호 선생이다.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진주내과병원을 운영하는 백경권 원장이 그의 장남이다. 부자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작곡가로 활동하거나 학생으로서 학업을 이어오다가 진주에 정착했었다. 아버지의 처가 사람들이 주로 진주에 살았고, 아들 역시 처향이 진주여서, 부자에게는 진주가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백 선생은 지금 진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영면해 있다. 아버지가 해온 필생의 업을 알리고 선양하는 데 그토록 정성을 기울이면서 열정을 쏟는 백 원장의 경우는 내가 그 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사례다.

1964년에 일본에서도 제목이 비슷한 노래가 발표되어 국민가요로 사랑을 받은 노래가 있었다. ‘동백 아가씨’와 거의 동시에 발표된 ‘아가씨 동백’이다. 일본어로는 ‘앙코 쓰바키’로 발음이 된다. ‘앙코’는 한 섬마을의 방언으로서 언니, 또는 아가씨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물론 ‘쓰바키’는 동백나무, 혹은 동백꽃을 가리킨다. 이 노래는 한국계 여가수로 유명했던 미야코 하루미가 불렀다. 한때, 우리의 ‘동백 아가씨’ 못지않은 일본의 국민가요였다. 하지만 이 두 노래의 멜로디는 비슷한 구석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다.

두 노래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었다면, 노래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또 노랫말이나 영화의 내용이 대도시 총각에 대한 섬 처녀의 애절한 짝사랑을 주제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 두 나라가 도시와 시골의 경제적, 문화적인 격차가 있던 사회였음을 노래에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서로 달랐다. 1964년이라면, 한국은 이제 막 산업화를 시작할 무렵이었고, 일본은 산업화의 완성 단계를 향유하는 시점이었다. 특히 일본은 이 사실을, 도쿄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알리려고 했다. 우리나라의 서울올림픽(1988)도 이러한 의도와 맥락에 놓여 있었다면, 한일 간의 산업화 격차 역시, 두 나라 간에 24년의 격차가 있었음이 알기 쉽게 이해될 것이다.

백영호의 ‘동백 아가씨’가 인기 절정에 이르렀을 때 금지곡이 된다. 왜색가요라는 이유에서다. 그 당시에 한일 국교 정상화를 앞두고 국민들의 반일 감정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이 감정을 누그러뜨려야 할 정치적인 희생물이 필요했다. 인기 있는 가요 ‘동백 아가씨’가 이런 프레임에 딱 걸려들었던 거다. 소위 왜색가요란 코에다 걸면 코걸이요, 귀에다 걸면 귀걸이였다. 우리나라 트로트 가요는 본디 유행가라고 지칭되었다. 1970년대 포크송 계열의 통기타 가수들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할 때까지 유행가라는 이름이 유효했지만, 1980년대에 이르러선 뽕짝이라고 폄하되기 시작했다. 유행가는 1920년대 후반에 형성되었다. 이에 비해 일본의 소위 엥카는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했던 고가 마사오의 노래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1931)로부터 시작한다. 유행가가 엥카보다 기원적으로 4년 앞선다. 그 역시 한국 속요에서 엿보이는 한(恨)의 정서를 수용했다. 한국의 유행가에는 일본 엥카가 자주 보여주었던 불륜의 사랑이 거의 없다. 엥카에 없는 부모 은공이란 유교 가치가 유행가에선 빛을 발했다. 노래에선 음악적 형식 못지않게 정서의 수용이 그만큼 중요하다.

백영호 선생의 탄생 백 주년에 즈음해 생의 마지막 터전인 진주에서 아주 조용한 분위기의 음악회라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사태를 더 지켜보면서 연말에 이르러서 말이다.

 
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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