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의 주요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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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08.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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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두 (경남서부보훈지청장)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경남서부보훈지청 지역 내의 독립운동관련 현충시설과 함께 그와 관련한 독립운동을 소개한다.

한말 진주 의병은 1896년 노응규 지사에 의해 함양의 안의에서부터 시작했다. 노응규 지사는 함양출신으로 덕유산 장수사의 승려인 서재기를 선봉장에 임명하는 등 의병진을 편성하고 2월 19일 저녁에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에 도착했다. 진주향교로 들어가 향후 작전계획을 수립한 뒤 다음날 새벽 순식간에 진주성을 점령했다. 고종에게 창의소를 올려 “절사(節士)는 목숨을 경솔히 버리지 않으며, 의리를 붙잡는 것은 군자의 의무이옵기에 적개심을 이기지 못하여 의병을 일으켰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에서 파견된 이겸제가 이끄는 경군 500여명과 대구진위대군에 의해 일시에 함락되었다. 선봉장인 서재기도 안의의 서리들에 의해 살해되고, 노응규는 안의의 서리들에 의해 부친과 친형이 살해됐다.

100여 년 전 기미년 독립만세 운동 역시 서부 경남에서도 뜨겁게 일어났다. 그 중 합천은 기미년 3월 18일 삼가면을 시작으로 23일까지 매일 합천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해인사 등에서 4월까지도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졌다고 한다.

산청은 파리장서운동의 출발지이다. 산청은 3.1운동 당시 면우 곽종석 선생이 파리강화회의에 장서를 보내 조국의 독립을 청원한 ‘파리장서운동’의 출발지가 된 곳이자 유림 독립운동의 중심이 된 곳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손꼽히는 남명 조식 선생이 산천재에 기거하며 영남 3대 의병장으로 불리는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항일 독립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 단성면 성내리에는 산청, 단성 등지에서 봉기한 수천 군중과 옥고를 치른 애국지사와 무명의 애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항일독립유공자 추모비가 있다.

진주에는 3월 18일 진주 장날 오후 1시 이영규가 비봉산 위에서 나팔을 불어 모인 군중이 일제히 봉기를 시작했다. 경남도청에 도착했을 때는 약 3만명으로 늘어났고, 이후 걸인독립단, 기생독립단도 태극기를 선두로 남강변두리를 둘러 촉석루를 향하여 시위했다. 이처럼 독립운동에는 유림, 학생, 걸인, 기생 등 신분과 남녀노소 구분 없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국민이 참여하였다는 점, 그리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많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또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일이다.

강석두/경남서부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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