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꺼리 Ⅲ
때꺼리 Ⅲ
  • 경남일보
  • 승인 2020.08.2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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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민 (산청군 기획조정실 공보계 주무관)
처음 한동안은 나름의 보람도 얻고 재미도 느끼며 일했던 걸로 기억한다. 특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청소년들을 발굴해 지원하는 사업을 도왔던 것은 가장 뿌듯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일이었다.

사고로 가족을 잃거나, 삶의 터전이 무너져 내린 어린이들과 그 가족의 사연을 취재하고 보도했던 일은 지금도 가장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다. 물론 실제 후원사업은 모두 어린이재단이 했지만 나도 그 뜻 깊은 일에 조금 힘을 보탰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자’라는 직업과 삶은 나에게 맞지 않는 옷으로 변해갔다. 힘들고 어려우니 도망친 것일 수도 있겠다. 보통 언론사나 기자를 찾아 뭔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바꿔 말하면 기자를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적이 있다. 실제로 소위 제보를 해 오는 사람들 중 생각보다 상당수가 언론플레이를 통해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기자가 쉽게 생각하고 한쪽의 말만 듣고 기사를 쓰게 되면 반대편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기자가 갈등을 조장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펜의 힘을 실감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얼마나 악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절감했다.

더한 경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취재를 중단하기도 한다. 그러면 제보자에게 전화가 온다. 왜 취재를 안하냐, 돈 받아 먹었냐. 최악의 경우긴 하지만 진짜 저런 같잖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결정적으로 ‘안 좋은 소리를 계속해야한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 좋게 보면 불합리한 구조나 사회현상을 밝히고 알려 바로잡는 것이지만, 조금 다르게 말하면 ‘이거 왜 이러냐 바꿔라, 저거 안 좋다 고쳐라’ 이런 이야기를 쉬지 않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스트레스였다. 좋은 거, 예쁜 거만 보고 행복한 생각만 하며 살기에도 짧은 세상, 남 듣기 싫은 소리를 평생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강단 없이 약해 빠져서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나.

아무튼 그렇게 그 버거운 옷을 벗어던졌다. 물론 지금도 그때처럼 매일 때꺼리(여기서는 양질의 보도자료를 말한다) 걱정을 해야 하고, 업무량이나 챙겨야할 일은 솔직히 4~5배는 더 많은 거 같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 보다 편하다. 좋은 이야기만 하면 되니까. 뭐 가끔 대통령 앞에서도 꿀릴 거 없던, 자유로운 영혼 같은 ‘기자’라는 신분이 살짝 그리울 때도 있지만.

곽동민/산청군 기획조정실 공보계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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