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0]소를 찾아 떠난 우두산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0]소를 찾아 떠난 우두산
  • 경남일보
  • 승인 2020.08.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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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세계인 ‘소’를 찾아서

산의 형세가 소머리를 닮아 우두산(牛頭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불교에서 수행자가 정진을 통해 본성(진리)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심우(尋牛)라고 하는데, ‘소를 찾다’는 말에서 소는 진리나 도를 뜻한다.

사찰 벽화에 그려놓은 심우도를 보면, 소를 찾아 떠나는 동자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뒤, 소의 모습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여기저기 헤매다 드디어 소를 찾아 기른다. 소를 기르며 수행정진을 통해 마침내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성인 ‘참나’를 깨닫는 과정을 10장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심우도이다. 실제 소머리를 닮은 우두산은 별유산(別有山)라고도 불렸는데 인간 세상이 아니라 진리의 세계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산, 즉 ‘참나’를 찾아 수행하는 깨달음의 공간으로 여겨왔기에 이름을 우두산이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우두산 산행은 진주돗골한마음산악회(회장 윤상규) 회원들과 함께 수행하는 마음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고견사주차장-고견사-의상봉-우두산-코끼리바위-삼거리갈림길-Y자형 출렁다리-거창 한(韓) 항노화힐링랜드-고견사주차장으로 트레킹 코스를 잡았다. 우두산의 자랑은 암봉과 기암괴석으로 이어진 바위능선이다. 그런데 온산이 구름과 안개에 가려있어 그 풍광을 볼 수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쉬웠지만 필자가 찾고자 하는 ‘소’, 즉 진리의 세계를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해 주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처음엔 평이한 오르막길이었다. 30분 정도 올라가자 고견사와 쌀굴 갈림길 안내판이 나타났다. 의상대사가 수도할 때, 매일 2인분의 쌀이 나왔다는 전설이 서린 쌀굴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곧장 고견사로 향했다. 길은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계곡길을 한참 올라가자 길 옆으로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견사 스님들이 쓸 물자들을 운반하기 위해 고견사주차장에서 고견사까지 꽤 먼 거리를 연결해 놓았다. 모노레일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자 눈앞에 고견사가 나타났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고견사는, 원효대사가 절터에 와 보니 전생에 와 본 곳임을 알고 이름을 고견사(古見寺)라고 붙였다고 한다. 고견사 주차장에서 1.8km나 떨어진 꽤 높은 산중턱에 자리잡은 절인데도 제법 규모가 컸다. 일주문 역할을 하는 금강문을 들어서자 최치원 선생이 심었다는 큰 은행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라말 대학자이면서 은둔자의 삶을 산 최치원 선생이 심은 나무라고 하니 최소한 수령 천 년이 넘는 나무이다. 고견사의 역사와 품격을 은행나무 짙푸른 잎들이 탐방객들에게 말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개와 빗속에 가려진 의상봉

대웅전 뒤 사성각 뒤켠에 있는 바위에 마애불을 조성해 놓았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향해 인자하게 굽어보는 눈빛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고견사부터 산길은 엄청 가팔랐는데,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곳곳에 불상을 모셔 놓거나 기도처가 있어 잠시 무거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숨을 헐떡이며 닿은 의상봉은 의상대사가 참선한 곳이라 한다. 주변 경관이 워낙 빼어나고 아름다워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첫머리를 따 별유산(別有山)이라 할 만큼 비경을 거느린 봉우리다. 덕유산, 지리산, 장군봉, 우두봉 등을 다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 안타깝게도 비와 안개에 가려 그 절경이 보이질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상상 속에서나마 비경을 담아올 수밖에 없었다.

의상봉에서 우두산까지 미끄러운 바위 능선을 타고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거세진 빗속에서 능선을 오르내리는 필자의 모습이 마치 ‘소’를 찾아 떠난 수행자의 모습처럼 보였다. 오늘 수행에서 가장 큰 고비를 맞는 순간이다. 우두산 정상에 이르자 빗발도 조금씩 수그러들었다. 소를 찾기 위해 안개와 거친 비를 뚫고 가파른 오르막과 험한 능선을 건너온 필자의 몸은 땀과 비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마음은 무척 평온해져 있었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코끼리를 닮은 큰 바위 하나가 길옆에서 탐방객들의 수행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크고 작은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고 꿋꿋한 걸음으로 전진하는 코끼리처럼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신중한 걸음걸이로 내려왔다. 우두봉에서 2km 정도 코끼리 걸음으로 내려오자 깊은 계곡 위에 설치된 Y자형 출렁다리가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조형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곳이 피안의 세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장사진을 이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아쉽게도 아직 개방을 하지 않아 두 눈 가득 그 풍경만 담고 돌아서야 했다. 안개와 빗속을 헤치고 의상봉과 우두봉과 같은 험한 능선을 건너온 덕분에 눈호강과 더불어 행복감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마음의 ‘소’를 만나다

나무데크와 야자매트로 만든 길을 따라 500m 정도 내려오니 거창 한(韓) 항노화 힐링랜드를 만날 수 있었다. 숲체험장, ™Ÿ속도서관, 산림치유센터, 자생수목원, 산수국원, 명상장 등과 치유의 숲 무장애길, 솔바람길 등 힐링체험공간을 한창 조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총사업비 184억원을 들여 공사하고 있는 거창 한(韓) 항노화 힐링랜드는 올해 10월경 완공 예정인데, Y자형 출렁다리와 항노화 힐링랜드를 함께 개방한다고 한다.

다행히 소나무숲길에 조성된 무장애길은 개방해 놓았다. 계단없이 만들어놓은 나무데크길엔 아름드리 적송들이 탐방객들을 호위라도 해 주려는 듯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무장애길을 따라 500m 정도 계곡 속으로 들어가자 30여 미터 높이의 견암폭포가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필자를 반겨 주었다. 옛날 부처님의 사자후가 저처럼 장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대한 소리였다. 오늘 내린 비가 폭포를 폭포답게 했고,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를 사자후로 바꿔놓은 것 같았다. 온종일 안개 속을 걸었지만 머리는 한없이 맑아져 있었고, 거센 비바람과 씨름하며 걸었지만 마음은 환해진 하루였다.



/박종현 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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