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제주4.3 대책회의와 광주5.18 대책회의
[경일포럼]제주4.3 대책회의와 광주5.18 대책회의
  • 경남일보
  • 승인 2020.08.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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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경남작가회의 회원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는 서울역 광장의 시위대를 보면서 평화로 가는 길이 무척 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그렇거니와 지나온 우리의 현대사도 마찬가지였다. 반평화세력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평화와 반평화세력이 마주 앉은 두 번의 회의를 보면 확실해진다. 그 회의의 공통점은 다양한 방안을 의논하는 회의가 아니고, 강경진압 방침을 강요하는 자리였다.

1948년 제주4·3항쟁이 일어났을 때였다. 9연대장 김익렬과 유격대장 김달삼의 4·28평화협상이 결렬되고 난 후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는 최고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 5월 5일, 제주중학교 미군정청 회의실에 미군정장관 딘 소장, 민정장관 안재홍, 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준장, 경무부장 조병옥, 제주도 군정장관 맨스필드 대령, 제주도지사 유해진, 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렬 중령, 제주도 경찰감찰청장 최천, 딘 소장 전용통역관 김씨 등 아홉 명이 모였다. 군정장관 딘 소장이 주도하였다. 온건파인 김익렬은 회의에서 무력 위압과 설득, 선무, 귀순 공작을 병용하는 작전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조병옥은 김익렬이 제출한 사진첩이 전부 허위조작된 것이라고 하였다. 사진첩에는 4·28평화협상을 물거품으로 만든 오라리 방화사건이 경찰들의 소행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병옥이 손가락으로 김익렬을 가리키며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이면서 회의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김익렬과 조병옥의 몸싸움이 시작되었고, 결국 경호 중이던 미군 헌병에 의해 진정되었다. 미군정시기의 군정장관 딘 소장은 이미 토벌 작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회의는 필요한 절차에 불과했다. 수뇌부 회의 다음 날인 5월 6일, 4·3항쟁이 일어난 지 불과 32일 만에 김익렬은 9연대장에서 해임되었다.

4·3항쟁이 일어난 지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였다. 전두환 쿠데타세력은 경찰에게도 광주 시민들을 향해 발포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안병하 전남경찰청장은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는 없다”며 발포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 쿠데타세력은 이런 분위기를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계엄군이 일시 철수하고 전남도청에 시민군이 진입한 뒤인 5월 25일, 도청 진압작전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광주 외곽에 있는 전투교육사령부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함께 이희성 계엄사령관, 김종환 내무부 장관, 소준열 전투교육사령관, 안병하 전남경찰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희성은 최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안병하에게 “경찰이 무장하고 도청을 접수하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안병하는 “경찰은 시민군에 형제, 가족도 있을 테고 이웃도 있는데 경찰이 무기를 사용하면서까지 할 수 없다”고 말하며 경찰 무장을 거부했다. 그러자 이희성은 “저런 사람이 전남 치안을 맡고 있는 경찰인가?”라며 비난했다. 안병하는 이렇게 대통령 앞에서까지 경찰의 무기 사용을 극구 반대하며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이날 회의에서 안병하는 경찰에게 발포하라는 쿠데타세력의 강요를 끝까지 거부했다. 안병하 국장은 다음 날인 5월 26일 보안사령부로 연행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이날로 그의 전남경찰국장 직위도 강제로 박탈됐다. 70여 년 전에는 선무, 귀순공작을 주장한 김익렬이 반통일세력인 조병옥과 싸웠고, 40여 년 전에는 평화시위를 보호하려는 안병하가 쿠데타세력인 이희성과 싸웠다. 평화를 지키는 길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지난 7월에 국회에서 5·18관련 8개 법안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이번에는 여야합의로 평화롭게 통과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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