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사회적 거리두기 ‘고슴도치 딜레마’
[경일시론]사회적 거리두기 ‘고슴도치 딜레마’
  • 경남일보
  • 승인 2020.08.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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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들은 곧 자신들의 가시가 동료들을 서로 찌르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너무 아파 곧 흩어지지만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다시 모여든다. 가시가 서로를 찌르면 흩어졌다가 또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에 찔리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알아낸다.

고슴도치들은 추위를 견디려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그렇다고 떨어져 있으면 추워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처럼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떨어질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을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라고 한다. 그들은 결국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최적의 거리’를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많은 피를 흘리고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다.

자신의 가시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방의 가시로 인해 내가 상처를 받는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면 상처를 입히지도 입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냥 떨어져 사는 게 편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알게 되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가까워지든가 멀어지든가 하는 것을 반복해서, 서로 그다지 상처 입지 않고 사는 거리를 찾아낸다는 사실을….”

지금 전 세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을 줄이자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에서 사람들이 접촉하는 물리적 기회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기업은 물론 학교와 종교단체 등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접촉을 원천적으로 줄임으로써 감염을 사전에 예방하는 바이러스 예방법이다. 이를 위해 권장하고 있는 것이 재택근무와 온라인 강의, 종교집회 자제 등이다. 호흡기 질환은 거리두기가 마스크 착용이나 손 씻기보다 더 근본적인 예방법으로 평가되고 있어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접촉기회 자체를 줄인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지구촌으로 번지자 미국 교회가 예배모임을 중단하여 사람간의 접촉을 삼가는 운동을 한 것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백신도 없고 치료방법도 없을 때 유일하게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예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가장 확실한 전염병 확산방지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으로 올해 3월부터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시행되고 있다.

볼품도 없고 온몸에 가시 같은 털이 돋은, 그래서 ‘최적의 거리’를 두고 사는 고슴도치의 외모에서 연유한 속담이 많다. 자식은 어버이 눈에 모두 잘나 보인다는 뜻으로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남에게 진 빚이 많을 때 ‘고슴도치 외 걸머지듯’이라고 하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친구가 있다는 말로는 ‘고슴도치도 살 동무가 있다’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북풍한설 몰아치는 얼어붙은 동토에 버려진 한 마리의 가시 돋친 고슴도치가 되어 버렸다”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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