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36) ‘죽음의 산 K2’, 100일간의 사투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36) ‘죽음의 산 K2’, 100일간의 사투
  • 경남일보
  • 승인 2020.08.3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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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동릉을 초등한 스페인 바스크팀을 운좋게 만났다. 제일 왼쪽과 제일 오른쪽은 알베르트 이누라테기와 펠릭스 이누라테기 형제. 이들은 12개 봉우리를 무산소로 등정한 후 13번째 등반에서 형인 펠릭스가 추락사했다.
전남산악연맹(회장 이상현)은 1999년 8000m 3개봉 동시 등정이라는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파키스탄 카라코람에 있는 K2(8611m)·가셔브롬1봉(8068m)·가셔브롬2봉(8035m)을 동시에 오른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3개 봉우리를 동시 등정을 목표로 원정대를 파견한 전례가 없었다.

이상현 회장은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낱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거대한 자연에 대한 도전의 역사는 계속되어왔다. 이번 99한국카라코람 원정대원들에 의해 행해지는 가셔브롬1봉과 가셔브롬2봉, 세계 2위봉 K2 등 8000m급 3개봉 동시 등정 시도는 한국 산악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산악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등반이 아닐 수 없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새천년을 앞두고 세계 속에 한국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영호남 산악인 교류를 통한 국가 정체성 확립이 목적이었다. 원정대는 지난 2년간 한라산, 월출산 등에서 동계훈련과 암벽훈련, 하중훈련 등을 거쳐 25명의 대원을 선발했다.

◇남남동릉 한국 최초 시도

K2 원정대는 전남에서 문종국·장순봉·배훈휘 대원이, 경남에서는 박정헌·박명환·유순욱·하태영이 참여했다. 등반 루트는 1954년 이탈리아가 세계 초등한 노멀루트가 아닌 남남동릉 루트였다. 한국은 1986년 노멀 루트인 남동릉을 이용해 3명의 대원이 정상에 서며 한국에서 첫 등정 기록을 세웠다. 한국 원정대는 모두 남동릉을 통해 등반을 시도했다. 원정대가 시도하는 남남동릉은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루트였다. 남남동릉 루트는 토모체센이 처음으로 등반해 7700m까지 진출했다. 1994년 스페인 원정대는 후아니토 오이에르자발이 이끄는 알파인 스타일이었다. 그들은 스페인 바스크 출신들이었으며 25살에 불과한 펠릭스 이누라테기·알베르토 이누라테기 쌍둥이 형제 등 5명이 등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원정대는 5월 21~22일 이틀간 순천과 목포에서 발대식을 갖고 장도에 올랐다. 김포공항에는 K2 대원 7명과 가셔브롬1·2봉 선발대 3명, 경남산악연맹 가셔브롬2봉 원정대원 5명도 함께 했다. 5월 23일 오전 10시 태국 방콕을 경유한 원정대는 파키스탄 라호르를 거쳐 이날 오후 2시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등반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밟았다. 1999년 파키스탄에는 많은 한국 원정대가 등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영호남 합동대 3개팀을 비롯해 경남산악연맹은 가셔브롬2봉·가셔브롬4봉을, 박영석 대장은 브로드피크 등 8000m 원정대 6개팀에 달했다. 말 그대로 파키스탄 카라코람에는 역대 한국 등반대가 가장 많은 해로 기록될 정도였다. 5월 26일 한국대사관에서 원정대를 초청해 점심을 대접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꽤 유명한 음식점이었다. 대원들은 멀고도 험한 카라반과 등반을 앞두고 만찬을 즐겼다.

 
199년 K2 원정대원

◇등산의 도시 ‘스카르두’

5월 28일 원정대는 파키스탄 카라코람 관문인 스카르두로 향했다. 대원들은 우리를 비롯해 경남산악연맹 대원 5명 등 11명은 버스로 이동했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 90일간 먹을 식량과 장비 등은 트럭으로 먼저 보냈다. 우리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시원스럽게 달렸다. 카라코롬 하이웨이는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속도로 유명하다. 중국 신장 웨이우얼 카슈가르~파키스탄 아보타바드까지 총연장 1200㎞에 달한다. 카라코람 산맥을 지날 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으로 알려진 쿤자랍(Khujerab Pass 4693m) 고개를 넘었다. 대원들은 낮에는 이색적인 파키스탄의 대자연에 감탄했다. 그러나 밤이면 덜컹거리는 차에서 불편한 잠자리에서 잠과 싸움을 벌여야 했다. 2명의 운전사는 교대로 22시간을 달려 다음날 새벽 스카르두에 차를 멈춰 세웠다. 밤새 구불구불하고,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다 보니 온 몸이 쑤셨다. 대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스카르두(Skardu 2340m)는 파키스탄 발티스탄주(州) 주도로 펀잡히말라야(낭가파르바트 8125m)와 카라코람산맥(K2)을 경계로 흐르는 인더스강 옆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원정대는 이곳에서 포터를 고용하고 휘발유나 식량, 신선한 야채·과일을 샀다. 무엇보다 스카르두에서는 장기간 원정에 꼭 필요한 달걀 수백 개를 한꺼번에 살 수 있는 곳이다. 원정대는 3일간 머물면서 필요한 식량과 장비를 구입했다. 6월 2일 지프 카라반을 시작했다. 스카루드에서 차로 갈 수 있는 최종 목적지는 아스콜레(3060m)였다.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 길을 2시간쯤 달렸다. 거의 사막이나 다름없는 황량함 그 자체였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버드나무가 있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들이 보였다. 협곡으로 접어들면 도로는 낭떠러지 위에 만들어져 있었다. 절벽을 깎아 만든 폭 2m에 불과해 차 1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그나마 최근 내린 비로 인해 도로가 곳곳에 끊겨 있었다. 차에서 내려 대원들은 건너편에 가 있으면 돌로 겨우 메워 차가 지나갔다. 6시간을 달려 아스콜레에 도착했다. 대원들은 넓은 공터에 텐트를 설치하고 첫날 밤을 보냈다. 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졌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수백명의 포터들이 K2를 카라반을 하고 있다.

◇등반 전 고소포터 등 현지인 2명 사망

6월 3일 새벽 웅성거림에 잠을 깼다. 포터들이 몰려들어 우리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원들은 짐을 25㎏으로 다시 쌌다. 포터에게 1인당 25㎏까지 제공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었다. 오전 10시 대부분 포터들이 출발한 후 대원들도 머나먼 길을 떠났다. 원정대는 6일간 계곡을 넘고, 지루한 빙하를 건넜다. 6월 9일 오전 해발 4900m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17일 만이다. 다음 날 사고가 발생했다. K2 서릉을 등반하고 있는 일본원정대 보조 요리사가 생명이 위급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는 의사들로 구성된 스위스 트레킹팀을 소개했지만 보조 요리사는 숨지고 말았다. 며칠 전 다른 원정대 짐을 나르던 포터가 고소로 희생된 것을 감안하면 등반하기도 전에 벌써 2명이 사망한 것이다. 이틀간에 걸쳐 앞으로 90일 정도 머물 베이스캠프가 마련되자 대원들은 식량과 장비를 분리하며 바쁜 날들을 보냈다. 고소 포터를 고용하지 않은 만큼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고도 1600m를 올려야 1캠프

6월 13일 대원들은 첫 등반을 시작했다. 새벽 4시 일어난 대원들은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텐트를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하얀 사막과 마주했다. K2~브로드피크 사이에 펼쳐져 있는 광대한 고드윈 오스틴 빙하를 건넜다. 베이스캠프에서 등반이 시작되는 남남동릉 초입부까지는 약 1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이곳에 전진 캠프를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눈사태 위험이 있어 없애기로 했다. 새벽 6시 약 60도에 달하는 설사면에서 본격적인 등반을 했다. 이날 로프 1000m, 스노바 10개, 하켄 10여 개, 그리고 식량을 옮길 계획이었다. 박정헌 등반대장이 앞서 나갔다. 거친 숨을 내쉬며 1시간 동안 100m를 전진했다. 경사가 심한 바위와 많은 눈으로 뒤덮인 남남동릉은 만만치 않았다. 오전 10시 5400m까지 진출한 대원들은 김밥으로 배고픔을 달랬다.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따가운 태양은 등을 비추고 있었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아이젠에 눈이 쌓여 아이스 볼이 생기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은 전진을 어렵게 했다. 오후부터 심한 가스가 K2를 감싸기 시작했다. 초속 20~30m에 달하는 강풍이 몰아쳤다. 바람에 날리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악명 높은 K2의 바람이었다. 많은 산악인들이 K2의 폭풍에 목숨을 잃었다. 영국의 유명한 여성 산악인 알리슨 하그리브스도 희생양이었다. 그녀는 1995년 5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후 8000m 14개 봉을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모두 무산소로 오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세웠다. 그해 곧바로 K2도 무산소로 등정했다. 그러나 도전은 K2에서 멈춰 섰다. 1995년 8월 13일 K2 등정 후 하산하다 강한 폭풍에 휩쓸려 실종되고 말았다.

K2에서 발생한 대형 눈사태가 고드윈 오스틴 빙하를 휩쓸고 지나가고 있다.
◇1캠프 건설 다섯 번째 실패

대원들이 5600m에 진출할 무렵 정상 부근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잠시 후 강한 폭풍설이 몰아쳤다. 순식간에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대원들은 식량과 장비를 단단하게 고정해 놓은 후 하산을 시작했다. 1캠프(6400m) 건설에 실패한 대원들은 이제 필사의 탈출을 시작했다. 800m를 내려오는 데 걸린 시간은 40분이었다. 거의 뛰다시피 내려왔다.

6월 17일 등반 시작 8시간 만에 6000m를 넘어선 대원들은 오른쪽으로 100여m를 돌아 쿨르와르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앞을 가로막는 빙벽은 등반 속도는 나지 않았다. 오후 5시 1캠프 예정지까지 거의 접근한 6300m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경사가 심하고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텐트를 설치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이날까지 원정대가 설치한 로프 길이는 총 1500m에 달했다.

다음 날 새벽 5시 40분께 굉음에 대원들은 텐트 밖으로 뛰쳐나왔다. 우리 등반 루트에서 대형 눈사태가 발생했다. 수백만 톤에 달하는 엄청난 눈들이 시속 200㎞가 넘는 빠른 속도로 건너편 브로드피크를 덮쳤다. 2~3㎞에 달하는 지역이 초토화됐다. 말 그대로 지형이 싹 바뀌었다. 만약에 등반을 하다 만났다면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을 것이다. 모두 한숨을 내쉬며 텐트로 돌아갔다.

◇등반 12일 만에 1캠프 건설

6월 19일 새벽 2시 40분 대원들은 간단히 아침을 먹고 등반을 시작했다. 대원들은 어제 발생한 눈사태 지역을 지날 때 바짝 긴장했다. 왼쪽에 있는 K2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1시간 만에 지역을 통과했다. 다행히 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등반이 시작되는 곳에 도착했을 때 눈사태로 인해 우리가 남겨둔 장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5100m를 넘어서자 짙은 안개가 몰려왔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만나 K2를 향해 맹렬하게 몰려왔다. 순식간에 짙은 가스와 거센 폭풍이 몰아쳤다.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대원들 얼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은 거셌고 눈발을 더욱 굵어졌다. 박정헌 등반대장은 철수를 결정했다. 1캠프를 만들기 위해 5번째 등반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원정대는 기상악화로 1주일 휴식 후 6월 25일 등반을 시작했다. 새벽 3시 베이스캠프를 나선 대원들은 7시간 만에 6300m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데포(Depot: 식량·장비를 잠시 보관하는 것)한 텐트와 로프, 침낭을 찾아 1캠프로 향했다. 오랜만에 맑은 날씨는 대원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평균 10㎏ 이상의 무거운 짐은 속도를 떨어뜨렸다. 6200m를 통과하자 다른 원정대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낡은 픽스 로프가 눈에 들어왔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로프는 더욱 많아졌다. 남남동릉 얼마나 힘든 루트인지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등반을 시작한 지 정확히 12시간 만인 오후 3시 박정헌·문종국 대원이 6400m에 도착했다. 1캠프는 60도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 밑에 설치해야 했다. 전 대원들은 4시간에 걸쳐 피켈로 얼음을 깎아내 겨우 1동을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7명의 대원들은 비좁은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박정헌·장순봉·유순욱 대원은 2캠프로 향했다. 나머지 대원들은 하산했다. 등반조는 6800m까지 진출한 후 악천후로 베이스캠프로 발길을 돌렸다.

◇세계 두 번째 G4 북서릉 등정…낭보

7월 1일 박정헌·장순봉·유순욱 대원은 새벽 1캠프로 향했다. 그들은 픽스 로프를 이용해 순조롭게 등반했다. 오후 4시 15분 무전기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셔브롬4봉을 등반하고 있는 경남산악연맹 윤치원·강연룡 대원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북서릉을 통해 정상에 선 것이다. 대원들은 마치 자기들이 등정한 거처럼 기뻐하고 축하 무전을 보냈다. 등정 소식에 힘을 얻은 원정대는 등반에 속도를 붙였다. 7월 2일 새벽 B조 문종국·박명환·배훈희·하태영 대원이 1캠프로 향했고, A조는 2캠프로 전진했다. A조는 오후 1시께 7100m에 도착했다. 4시간의 작업 끝에 2캠프를 만들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지 23일 만의 성과였다.

 
2캠프로 오르고 있는 대원
◇크레바스에 빠진 대원…구사일생

오후 6시 전 대원들은 1캠프에 모여 좁은 공간에서 긴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대원들은 운행에 나섰지만 기상이 악화해 전 대원은 하산했다. 그날 저녁 빙하를 건너던 대원이 크레바스에 빠지는 아찔한 사고가 일어났다. 대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빙하를 건넜다. 한 줄로 늘어서서 걷던 대원들은 문종국 대원이 사라진 것을 알지 못했다. 한참을 걷다 1명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급히 돌아선 대원들은 문종국 대원을 찾았다. 다행히 그는 깊이 8m 정도 크레바스에 몸이 끼어 있었다. 대원들은 로프를 내려 끌어올렸다. 만약 운이 나빴다면 그는 ‘어둠의 계곡’에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는 회상했다. “너무 힘들어 아무 생각 없이 걷는데 갑자기 발이 빠지면서 몸 전체가 엄청난 속도로 얼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무릎까지 빠지겠지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컴컴한 어둠 속으로 빨려가고 있었다.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고함을 질렀지만 메아리만 울렸다. 정말 앞이 캄캄했다. 얼마 안 있어 대원들이 왔고 구조됐다.”

K2가 어둠에 갇힌 오후 7시 30분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대원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2캠프로 가는 대원들. 대원들 뒷쪽으로 왼쪽 높은 초골리사와 빙하가 고속도로처럼 펼쳐져 있다.
◇‘인샬라(Inshallah 신의 뜻이라면)’

사흘간 휴식을 취한 대원들은 회의를 가졌다. 박정헌 등반대장은 “11일까지 3캠프를 설치하는 것이 이번 등반에 가장 중요하다. 7800m에 3캠프가 만들어지면 곧바로 정상 공격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같은 시각 가셔브롬1봉과 가셔브롬2봉 원정대는 정상 도전에 나섰지만 악천후로 실패했다. 대원들은 눈보라와 강풍을 피해 2캠프와 3캠프로 후퇴해 있었다. 7월 7일 A조는 1캠프로 향했고, 다음날 B조가 뒤를 따랐다. 오전 5시 B조가 빙하를 건너고 잠시 후 5시 30분 대형 눈사태가 발생했다. 다행히 대원들이 지나간 뒤라 피해가 없었다. 당시 1캠프에 있던 유순욱 대원은 말했다. “갑자기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바로 밑에 있던 눈처마가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2㎞가 넘는 빙하를 지나 브로드피크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대원들은 7000m 지대에서 희박한 공기와 싸워가며 고정로프를 설치하며 고도를 높여갔다. 7월 9일 문종국·배훈희·하태영 대원은 2캠프를 출발해 200여m를 전진했다. 그들 앞에 놓인 암벽을 피해 왼쪽에 있는 60도 설사면을 돌아서 올랐다. 그러나 허리까지 빠지는 많은 눈을 헤치며 나아가는데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다. 대원들은 번갈아 가며 전진했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탈리아 등 등반 포기

7월 11일부터 사흘간 많은 눈이 내렸다. 7월 15일 등반을 재개했지만 눈 속에 묻힌 로프를 꺼내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뚫기 시작했다. CNN에서 앞으로 3~4일 날씨가 좋다는 예보가 있었다. 대원들은 2캠프에 텐트를 한 동 설치하고 3캠프에서 날씨가 좋다면 정상 공격을 시도하기로 했다. 7월 17일 10m를 전진하는데 30분이 걸렸다. 많은 눈은 앞을 가로막았다. 결국 오후 4시 7500m에 짐을 단단히 묶어 놓고 하산했다. 다음 날 2캠프에 머물던 박정헌 등반대장과 문종국 대원이 2캠프를 출발했다. 박정헌은 고군분투했다. 그는 19살의 나이에 히말라야 8000m 등반에 나서 에베레스트 남서벽·초오유·낭가파르바트 등을 등정하며 대한민국 산악계의 기린아로 부상했다. 그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7800m 지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체력에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를 가로막은 것은 날씨였다. 여름과 겨울이 교차하는 문순이 시작되면서 기상은 더욱 나빠졌다. 20여 일간 계속해서 비가 쏟아졌다.

8월이 찾아왔다. 한국을 떠나온 지 80일이 지났다. 서벽을 등반하던 일본 원정대는 포기하고 하산했다.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인 산악인 한스 커머랜더(당시 8000m 12개 등정, K2 미등정)도 등반을 포기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BC에서 한스 커머랜드와 함께 촬영한 필자
그는 우리 베이스캠프를 찾았다. “7월 17일 7700m에서 비박 후 정상 공격을 했다. 8300m 보틀넥 지점에서 눈이 많아 루트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눈이 얼지 않아 거의 헤엄치다시피 전진했다. 체력이 떨어졌고 추위로 결국 포기했다. 한국팀은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는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K2를 떠났다. 다음해 그는 K2 등반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결국 그는 8000m 14좌 완등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루마니아 팀도 대원 1명이 낙석에 맞아 숨지면서 포기하고 산을 떠났다.

◇100일간의 사투(死鬪)…내년 등정 발판 마련

원정대는 장기전에 돌입했다. 일본원정대가 머물던 서릉으로 찾아가 남은 식량을 갖고 왔다. 8월 8일 회의가 열렸다.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지만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 마지막 기회다. 3캠프에 진출한 후 4캠프 없이 곧바로 정상에 가야 한다.”

다음 날 대원들은 베이스캠프를 나섰다. 문종국·장순봉·배훈희·하태영 대원이 5700m까지 진출 후 하산했다. 다음 날 박정헌 등반대장·유순욱·박명환은 1캠프로 출발했다. 사실상 마지막 등반이었다. 대원들은 1캠프로 가기 위해 고정 로프를 찾았다. 로프는 그동안 내린 눈과 비에 얼어붙어 사실상 활용이 불가능했다. 피켈로 얼음을 깨고 로프를 찾아 등반할 수밖에 없었다.

장순봉 대원은 말했다. “1~2캠프 구간에 있는 고정 로프가 평균 50㎝ 눈 속에 묻혀 있거나 얼어 있어 빼내는데 4명의 대원이 한꺼번에 매달려야 했다.”

그날 오후 늦게 1캠프에 도착했다. 긴 하룻밤을 보낸 대원들은 2캠프로 향했지만 더 절망적이었다. 로프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전 대원은 철수를 결정했다.

박정헌 등반대장은 회고했다. “당시 날씨는 겨울로 접어드는 몬순이었다. 악천후가 2~3일 지속될 경우 1캠프에 있는 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해야 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7400m에 갖다 놓은 산소와 텐트 등 모든 장비를 포기했다.”

8월 17일 베이스캠프를 철수하는 날 폭설이 내렸다. 대원들은 개인 장비만 챙기고 탈출을 시도했다. 고소 포터나 셰르파 없이 7명의 대원들은 100일 간 사투를 벌였지만 남남동릉 한국 초등에 실패했다. 그러나 1년 후 영호남 원정대 8명의 대원이 정상에 서는 발판을 마련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1999년 K2 원정 취지문]

아름다운 산, 산행, 사람, 삶을 위한 우리들의 이야기
아름다운 산을 생각하며 저희들은 살아갑니다.
꿈속에서 보이는 하얀 산들에 대한 동경이 우리들의 삶을 용기있게 꾸려 가도록 돌보아 준답니다.
산속에는 생존의 법칙만이 있답니다. 그 법칙을 따라서 우리는 살 비비며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배운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동료의 따스함을 느끼고 무섭게 내리치는 폭풍설 속에서 맑은 영혼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답니다.
카라코람 3개봉 등정을 위한 우리의 몸부림은 진정한 자유를 위한 추구이며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이 큰 만큼 우리들은 더 큰 덕덕함을 배우며 삶을 배울 것입니다.
보다 나은 행복을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누기 위한 삶의 방법을 등반을 통해 이루어 낼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 저 건너편에 우뚝 서 있는 또 다른 카라코람의 봉우리들을 좀 더 의젓하고 용감하게 오를 수 있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와 살아 숨쉬는 것이 이토록 몸 저리는 기쁨이다는 것을 우리 모두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5월 15일, 1999한국가셔브롬Ⅰ·Ⅱ, K2원정 총대장 위계룡

 

얼음탁자 위에 선 대원들. 뒤로 K2가 절대군주의 위엄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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