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내 탓이오’하는 책임 정치를 갈망한다
국민은 ‘내 탓이오’하는 책임 정치를 갈망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8.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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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호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오벌오피스 책상 위에는 ‘The buck stops here!’란 말이 쓰인 패가 놓여있었다고 한다. 이를 번역하면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뜻이다. 실제로 트루먼 대통령은 결정을 망설이고 있는 각료가 있으면 “책상 위 패를 가리키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자신을 가지고 추진하라’”고 힘을 실어 주었다고 한다. 이것이 책임 있는 지도자로의 덕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취임사에서 천명했다. 그러나 정권 초기부터 ‘일이 잘되면 내 탓이요, 잘못되면 네 탓이다’라고 하는 묘각재판(猫脚裁判:사건의 잘못을 남에게만 책임 지움)으로 이어져 왔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엔 발생한 문제는 모두 ‘전 정부의 적폐 탓’이라 했다. 이후 ‘야당 탓’, ‘언론 탓’으로 돌렸다. 집권 2년 차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나오지 않고, 최저임금 정책의 실효성이 가시화되지 않으니 “야당의 상습적 국회 파행과 마비 탓으로 경제와 수출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했다. 북한이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을 트집 잡아, 대남 총공세에 나서며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폭파하자, 여권은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 탄생도 북한 입장에선 큰 메시지”라며 ‘탈북민 의원 탓’이라 한다.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유죄 판결은 ‘검찰 탓’이라 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에 대한 취준생의 분노는 ‘가짜 뉴스’로 유발되었다며 언론 탓으로 돌렸다. 조국 전 장관 가족 수사에 대해서도 왜곡·과장된 보도라며 언론 탓한다. 1.6개월에 한 번꼴인 조령모개(朝令暮改)의 부동산 정책에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에 대해서는 이생집망(이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의 허탈감을 심어주면서 일반 주부는 물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했다는 뜻)의 젊은 층 투기 탓이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3법이 아파트 폭등의 원인이라며 ‘전 정권 탓’으로 돌린다. 윤미향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선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중국에서 발원한 ‘코로나19’의 확산 책임은 특정 종교(신천지) 탓으로 돌리고, 해외 유입의 방역 실패는 ‘겨울엔 모기가 없다’며 중국에서 입국한 국민 탓이라 하였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확산되자 8.15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특정 교회와 야당 탓으로 돌리며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교회 등의 소모임 금지를 해제하고 외식, 공연, 8대 소비 쿠폰 등으로 소비를 위한 공동체 활동을 권장했다. 나아가 임시공휴일까지 지정해 국민에게 이제 일상생활로 돌아가도 된다는 신호를 먼저 보냈다. 하루에 800-2000명까지 확진자가 증가할 수 있다며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간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라는 질병관리본부의 한 직원의 절규에도 반성이나 사과는 한마디도 없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우리 대통령에 대하여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라며 꼬집는다. 그러면서 “나는 고결하지도, 통치에 능숙하지도 않고. 하늘의 뜻에 어긋날 때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고, 내가 그 질책에 답하게 하시오”라는 세종대왕의 말을 새겨 보라는 고언(苦言)을 한다. 남의 고언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진군자(眞君子)다. 문제가 발생하여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상대방 탓을 하면 일시적으로 책임은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범부(凡夫)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물며 한 국가를 운영하는 최고 지도자의 덕목은 더욱 아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 책임 전가는 그 문제를 영원히 풀지 못하게 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마음으로 그 원인을 찾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
 
이웅호(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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