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한 마리 좀 벌레’
[천왕봉]‘한 마리 좀 벌레’
  • 경남일보
  • 승인 2020.09.09 17: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중기 (논설위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왕조시대 상소문 형식으로 ‘시무 7조’를 올린 자칭 ‘진인(塵人)’이라는 인물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스스로 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30대 후반의 가장이라는 주인공. 공사장을 전전하며 매일 같이 마셨던 먼지가 자신의 처지와 닮아 아호로 삼았다고 한다.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표현한 겸양의 대가를 한 분 꼽으라면 단연 일두(一蠹) 정여창이다. ‘일두'는 ‘한 마리 좀 벌레’이라는 의미다. 이황,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과 함께 조선시대 유학을 대표하는 동방오현으로 불리던 정여창이 얼마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평생을 살아왔는지 짐작 할 수 있다.

▶일두는 세조와 성종이 벼슬을 내렸지만 사양하고, 당당하게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나선 인물로 유명하다. 부친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다가 순국하자 왕이 벼슬을 내렸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식이 영화를 누리는 일은 차마 못 할 일’이라면서 받지 않았다. 요즘말로 치면 ‘아빠 찬스’를 포기하고 공채에 응한 셈이다.

▶무오·갑자사화로 고초를 겪고 부관참시까지 당했지만, 훗날 우의정에 추증되고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일두의 흔적은 세계문화유산 함양 남계서원과 개평마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겸양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온갖 ‘찬스’가 난무하고, 오기와 독선으로 자기편 주장만 옳다고 우기는 오늘 날 일두 사상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한중기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