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기 (논설위원)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왕조시대 상소문 형식으로 ‘시무 7조’를 올린 자칭 ‘진인(塵人)’이라는 인물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스스로 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30대 후반의 가장이라는 주인공. 공사장을 전전하며 매일 같이 마셨던 먼지가 자신의 처지와 닮아 아호로 삼았다고 한다.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표현한 겸양의 대가를 한 분 꼽으라면 단연 일두(一蠹) 정여창이다. ‘일두'는 ‘한 마리 좀 벌레’이라는 의미다. 이황,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과 함께 조선시대 유학을 대표하는 동방오현으로 불리던 정여창이 얼마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평생을 살아왔는지 짐작 할 수 있다.
▶일두는 세조와 성종이 벼슬을 내렸지만 사양하고, 당당하게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나선 인물로 유명하다. 부친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다가 순국하자 왕이 벼슬을 내렸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식이 영화를 누리는 일은 차마 못 할 일’이라면서 받지 않았다. 요즘말로 치면 ‘아빠 찬스’를 포기하고 공채에 응한 셈이다.
▶무오·갑자사화로 고초를 겪고 부관참시까지 당했지만, 훗날 우의정에 추증되고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일두의 흔적은 세계문화유산 함양 남계서원과 개평마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겸양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온갖 ‘찬스’가 난무하고, 오기와 독선으로 자기편 주장만 옳다고 우기는 오늘 날 일두 사상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한중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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