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수해 한 달 지난 진주 내동면
[르포] 수해 한 달 지난 진주 내동면
  • 백지영
  • 승인 2020.09.09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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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방류 침수 따른 고통은 ‘현재 진행형’
주민, 고장 난 가전제품 등 보상 원하지만
수공 ‘설비 지원만 가능’ 방침에 소송 고민
9일 오전 진주시 내동면 양옥마을 한 어성초 가공장에서 수해 복구 작업을 하던 한 이재민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성초 가공장 모두가 물에 잠기면서 마을회관 신세를 지고 있는 그에게 이곳은 그나마 햇볕을 쬐지 않고 앉아 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다. 사진 왼쪽으로는 거센 물살에 휘어져 버린 건물 벽체와 뜯어내 버린 문 자리가 보인다.

 

지난달 7~8일 집중호우 당시 남강댐이 갑작스럽게 역대 최대 수준의 물을 방류하면서 주택 침수 25가구 등 98가구가 침수 피해를 본 진주시 내동면.

수해 발생 1달이 지난 9일 오전 11시께 다시 찾은 내동면 양옥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침수 피해가 ‘현재 진행형’이라고 입을 모았다.

벽과 지붕만 남은 채 내부는 텅 비어있는 자택 밖에서 방충망을 씻고 있던 이경자(68)씨는 여전히 집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상황을 토로하다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침수된 지 1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집에 전기도 안 들어온다. 집에 있던 모든 물건이 뻘에 뒤덮여 수해복구 과정에서 전부 버려졌다”며 “집에 앉아서 쉴 곳도, 커피포트도 하나 없으니 집을 정비하다 쉬고 싶어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지난달 8일 오전 7시께 집으로 물이 급격하게 들어차면서 신발도 못 신은 채 119구조대 보트에 의지해 집에서 ‘탈출’했다.

10여 년 전 집을 지을 당시 침수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바닥에 1.2m 높이의 터를 닦은 후 집을 올린 게 무색하게도 물은 그의 머리까지 차올랐다.

그는 “수자원공사라는 대기업이 댐 관리 실책으로 주민들의 삶을 짓밟아 놓고서도 책임을 안 지려 하니 너무 원망스럽다”고 울먹였다.

주택 옆에 지어둔 어성초 가공장 상황도 비슷했다. 거센 물에 조립식 패널로 만든 벽이 휘어져 뻥 뚫리고 내부에 쌓아뒀던 포장재 등 사업 용품은 모두 잠겨 폐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아들 문창현(58)씨는 “당장 우리 집과 생업에 생긴 피해만 대충 추산해도 6억원 상당”이라며 “정부에서 재난지원금 200만원을 주는 주택 ‘침수’에는 집 이외에 어성초 가공장은 포함 안 된다고 한다. 그 돈으로 한 달 전 평안했던 삶으로 복구시키기엔 턱도 없다”라고 토로했다.

주민들의 항의 끝에 수자원공사가 침수 주택에 전기 설비, 도배·장판 공사, 보일러·가스레인지 설치 비용 등을 부담하고는 있지만, 내부를 채울 냉장고 등 집기 보상에는 난색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9일 오전 진주시 내동면 양옥마을에서 한 달 전 수해로 집이 망가진 이재민이 임시 거처로 쓰는 컨테이너 내부에 앉아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인근 이봉길(65)씨 집은 8월 초 집중호우 당시 집 벽이 갈라지고 담벼락이 무너졌다. 이 씨는 정든 집을 떠나기 싫어 침수된 벽도 바닥도 마르지 않은 퀴퀴한 방에 모기장을 친 채 생활했다. 지붕마저 망가져 비가 오는 날이면 집 안으로 비가 떨어져 지붕에 비닐을 덮고 지내야 했다.

지금은 상황을 본 수자원공사에서 임시로 빌려준 조그만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수해 현장에서 그나마 건져 올려둔 물품들을 쌓아둔 공간을 제외하면 이 씨 혼자 몸을 누이면 끝일 정도로 협소하다.

이 씨는 “시와 수자원공사에 기존 수준 복구를 요청했더니 처음엔 기존 집(28평)을 허물고 7평짜리로 새로 지어준다고 하다가 어제야 17평까지 재건축 방식으로 가능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평수가 조금이나마 늘어 다행이지만 얼마 안 남은 부모님 제사나 추석은 이 컨테이너에서 보내야 할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양옥마을 안쪽 주택 8채가 있는 애양골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부분 집이 구식 한옥인데 지붕까지 물에 잠기면서 나무로 된 천장이 내려앉고 대문은 부서졌다.

수해 직후 복구가 진행되던 때 마을 주민들이 ‘어차피 또 잠길 테니 더는 이곳에서 못산다’며 복구를 사양해 아직 당시 모습이 고스란히 남은 주택 지붕 위로는 장독대, 냉장고, 의자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9일 오전 진주시 내동면 양옥마을에서 한 주민이 8월 초 집중 호우로 부서진 담벼락의 높이를 손으로 가늠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끝까지 이어졌던 담벼락은 집 뒤편에서 거세게 치고 들어온 물길에 부서지고 아랫부분만 남았다. 

 

주민 대부분이 80~90대인 애양골에서 최연소라 부녀회장을 맡은 최영심(75)씨는 “갑자기 물이 불어 목까지 들어차는 상황이라 돈도 휴대전화도 못 챙기고 마을 뒷산으로 피신했다”며 “장대비를 맞으면서 흙바닥에 주저앉아 내 집이 지붕까지 잠겨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침수 이후 애양골 주민들은 한 달 째 인근 마을회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거나, 자녀 집에 몸을 의탁하는 등 편치 않은 생활을 해왔다. 시와 수자원공사가 올해 가을 중 완공을 목표로 하는 7평짜리 임시주거시설이 조성되면 그때야 이재민 신세를 ‘임시로’ 벗어날 예정이다.

취재진에게 초토화 된 집 상황을 안내하던 애양골 주민 딸 박모(52)씨는 “천장이 다 무너져 밖에서 볼 수만 있을 뿐 내부론 전혀 들어갈 수가 없다”며 “눈물 나서 못 보겠다. 이제 안 와야겠다”고 말했다.

양옥마을 이장 정진식(67)씨는 “수자원공사에 계속해 복구를 요구하고 있지만 ‘자연재해였던 만큼 우리는 책임이 없다. 이 이상의 지원을 원한다면 소송을 제기하라. 수자원공사의 잘못으로 판단 나면 법의 테두리 내에서 지원해주겠다’고 해 고발 절차를 밟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9일 진주시 내동면 애양골 주택 지붕에 장독대, 의자 등 집기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지난달 7~8일 집중호우 당시 남강댐 방류로 침수 피해를 본 애양골 주민들은 다시 댐 방류가 일어나도 잠기지 않을 임시주거시설을 건설하기 전까지는 수해 복구작업을 사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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