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스승
나의 어린 스승
  • 경남일보
  • 승인 2020.09.1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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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시인, 교사)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장 되고 있다. 이제 두 학년 식 묶어 학년별 전체등교로 1/3밀집도를 맞추고 있다. 드디어 각 학급의 전체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학급은 좀 더 활기가 느껴지고 목소리도 높아졌다.

아이들은 많은 친구를 만나 서로 사귀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선생님의 당부에도 몇 번 슬쩍 선생님 눈을 피해 마음에 드는 친구의 책상에 가서 마주 보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면 또 다시 당부가 시작 된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나처럼 아이들 안전을 지키려 노심초사 하고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와 친구를 위해 참고 있을까?

여덟 살 어린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로 학교를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 답답한 마스크를 코까지 쓰고 여름을 버티고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대견한 아이들은 벌써 나의 스승이 되어 내 마음을 밝히고 있다.

일주일에 이틀 대면 수업을 한다. 그 날은 기초학습 부진을 예방하기 위해 국어와 수학 위주로 수업 시간을 조정하여 운영하고 온라인 학습 때는 통합교과나 창의적체험활동으로 활동 위주의 수업을 안배해 놓고 있다. 친구들이 오지 않는 날에 원격수업지원을 받는 학생들과 돌봄 학생들이 학교에 온다. 점심 급식 지도 후 돌봄 교실로 가는 시간까지 한 시간가량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먼저 가는 아이 배웅하러 학교 밖까지 함께 다녀온다. 오는 길 가는 길이 모두 배움과 성장의 길이다.

언제부턴가 교정엔 알록달록한 나비가 있었다. 표범무늬가 있어 암끝표범나비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이름을 유추해 보도록 하면 희한한 답이 나온다. 살짝 다가가니 도망간다고 ‘겁쟁이 나비’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교실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으로 수많은 나비를 만나게 된다.

초등학교 일학년 아이들은 맑게 생활한다. 주어진 자기 삶을 있는 대로 순수하게 누린다. 즉 프리드리히 니체의 운명관처럼 삶을 긍정하는 아모르파티다. 그래서 나는 작금을 살아내는 아이들의 태도에서 코로나19라는 현실을 극복하는 삶의 긍정을 배우고 있다.

허미선 (시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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