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시인 김광섭
독립운동가 시인 김광섭
  • 경남일보
  • 승인 2020.09.1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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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창 무더울 때,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통해 오래되고 구하기 힘든 책들을 사들였다. 시집 한 권과 만화 한 질을 각각 10만 원 가깝게 투자한 것은 내 경제 규모를 넘어서는 일이다. 하지만 다 훗날의 작업을 염두에 두고, 눈에 뜨일 때 미리 사 둔 거다. 시집은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였다. 이것이 1969년에 간행되었으니, 반세기 남짓한 세월이 흘렀다. 내가 시편 ‘성북동 비둘기’를 처음 읽었던 시절이 1973년 고1때였다. 이미 4년 만에 이 시는 시인 김현승에 의해 한국의 대표 시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때까지 이 시의 표제어로 된 시집은 본 일조차 없었다.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더욱이 뇌 질환의 중환자가 병석에서 쓴 시들을 묶은 것이기에 소량의 부수로 간행한 게 틀림없다. 실제로 이 시집은 우리 시문학사에서 긴요한 시집이 되었지만, 판을 거듭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이산 김광섭 선생은 시인으로서 반생 이상을 살았다. 시편 ‘동경’(1935)은 시대의 어둠과 묵중한 분위기를 그려내면서 해방 조국의 흐릿한 모습을 동경한 내용의 시다. 시인인 그는 일제강점기에 분명하게도 독립운동가였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정신을 부추겼다고 해 3년 8개월의 감옥살이를 했다. 3년간을 보낸 한용운보다 더 오래 옥중에 머물렀다. 내가 구입한 시집을 읽으니 사람 이름 세 자로 된 시가 네 편 실려 있었다. 그가 다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중동학교 설립자 최규동,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특히 시편 ‘이승만’은 기다란 시행으로 구성된 장엄한 서사시와 같다. 그가 중풍으로 쓰러진 것이 이승만의 죽음 소식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더 살펴보겠다. 그는 이승만 지근의 자리에서 공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이 시집을 사들일 무렵에 광복절이 있었고, 광복회장이 식사를 통해 이승만과 안익태 등을 대놓고 비난해 쟁점을 몰고 왔다. 그는 이날 밤 공영방송국 9시 뉴스 시간에 출연해 세계적으로 나치 잔당에 대해선 무관용한데, 우리에게는 왜 친일파가 논란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한심했다. 나치즘은 일제와 시오니즘처럼 공격적 민족주의다. 친일파 문제는 방어적 민족주의이다.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다. 지금 광복회장은 누구인가? 유신과 신군부 시대에 요직을 향유한 이가 아닌가? 자신부터 돌아볼 일이다.

온 세계가 괴질로 휘청거리고 있는 올해, 영화 ‘기생충’과 BTS는 오스카상과 빌보드 차트를 석권함으로써 세계무대에 우뚝 섰다. 방어적 민족주의의 음습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동안 세계 경제 10위권에 놓여 있었어도 국제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왜? 방어적 민족주의의 이미지 때문.

극단적인 반일주의자 이승만을 친일파로, 나라 잃은 시대에 해외에서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를 친일 프레임 속에 가두어놓는 것은 실상의 논쟁 여부를 떠나 지금 이 시점에서 정치적으로 재미 좀 보겠다는 세력의 관념적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사라진 친일파를 때리면서 뒷북치고, 부재하는 토착왜구의 허깨비를 만들어 올가미를 씌우는 데는,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정치적인 저의가 깔려 있다. 이것은 훗날에 미래의 죄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문화혁명을 주도한 4인방이나 홍위병처럼 말이다.

독립운동가였던 시인은 이승만과 안익태를 노래했다. 그는 같은 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의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았다. 그는 세상을 떠나 말이 없고, 잘 알지 못하는 후인들이 떠든다. 한 인간의 전모와 전체를 살피지 아니하고, 치명상이 될 급소만을 찾고 있다.

 

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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