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토지개혁과 불평등 그리고 기본소득
[기고]토지개혁과 불평등 그리고 기본소득
  • 경남일보
  • 승인 2020.09.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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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덕/경남도의회 농해양수산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우리나라가 20세기에 단행된 것들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개혁으로 꼽자면 무엇보다도 1949년에 제정되고 1950년에 시행된 토지개혁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공평한 성장’을 토지개혁 덕분으로 보는 연구가 많다.

세계은행이 1993년에 펴낸 ‘동아시아의 기적’보고서는 한국과 타이완 등 급속한 경제성장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 중에서 이례적으로 공평한 소득분배를 동시에 이루었다고 찬사를 보내며 ‘공평한 성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러한 공평한 성장에는 노동집약 산업화 등의 공헌도 있지만 특히 토지개혁이 중요했다는 데에 여러 연구들이 일치된 결론을 보이고 있다.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소유 가구 비율은 1945년 13.8%에서 1964년 71.6%로 급증했고, 소작농 비율은 1949년 48.9%에서 1964년 5.2%로 떨어졌다. 소작 토지도 1945년 65%에서 1951년 8%로 떨어졌다. 토지개혁은 토지와 소득분배에 상당한 평등화 효과를 가져왔다.

또 토지개혁은 교육 확대를 촉진했다. 전문직 관료제의 정착과 시민사회의 발달,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이것이 한국에서 세대 간 상위 이동성의 주요 수단이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토지개혁 이후 낮은 수준의 불평등과 높은 수준의 국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경제 엘리트와 능력주의 관료제는 발전국가 형성을 가능케 한 디딤돌이었던 한편 부와 소득의 편중과 불평등을 강화하는 걸림돌이 됐다.

산업화를 위해 재벌 또는 대기업을 선택하면서 대기업에 의해 국가의존도는 높았고 민주주의 전환 이후에도 그 양상은 두드러진다. 대기업에 의한 경제 집중도의 차이는 관치와 정경유착, 부패에 영향을 미쳤고 불평등 확대로 이어졌다. 한편 능력주의 관료제는 학벌주의를 낳았다. 스스로 부를 일궜다고 불평등을 정당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모의 소득과 자원에 의존해야만 하는 불평등한 교육 시스템이 있었다는 점은 모두가 인지하는 바다. 문제는 이것들이 한국에서 세대 간 상위 이동성을 막는 주요 수단으로 작용하고, 민주주의 전환 이후 민주주의 수준의 꾸준한 상승은 불평등의 완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당대 불평등의 원인이 노동소득보다 훨씬 커진 자본소득이며 그 자본소득이 다음 세대로 세습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소득의 세습이 사회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 내고 불평등이 고착되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피케티가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의 불평등은 한국의 강남 좌파와 비슷한 개념인 ‘브라만 좌파’와 자산가 계층인 ‘상인우파’가 번갈아 집권하면서 불평등 체제를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은 그의 관점에서 일견 수긍이 가는 바다. 그는 대안으로 후속작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사회가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하는 ‘기본자산(basic capital)’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도 다양한 논의들이 나오고 있다. 기본소득을 적극 도입하자는 주장에서 비전통적 경제처방, 코로나발 처방이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핀란드 기본소득실험의 결과를 두고서도 기본소득의 고용효과가 미미해 노동의욕을 약화시킨다는 해석과 오히려 수혜자의 행복 만족도가 증가했다는 해석이 팽팽하다. 그가 던지는 기본자산제는 우리 사회에 ‘사회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방향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하면 이끌어 낼 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진 키위드다. 금융산업의 비대화, 정보화 격차 확대, 비대면 산업 증가, 인공지능시대 도래 등을 감안할 때 자본소득 우위시대의 확장과 지속화에 따른 불평등의 확대는 우려된다. 당연히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한 고민은 시대적 과제일 수 밖에 없다. 분명 기본소득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 복지제도의 포용성을 높이는 작업을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과제를 던져준 것은 자명하다. 전환기적 시대를 맞이한 지금, 70년 전 토지개혁의 성공과 지향가치는 향후 우리가 또 다른 성공가도를 달리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과연 복지 확대와 재분배를 위한 민주주의 효과성과 질적 향상을 위한 기본소득은 어디에서 매듭을 찾아 풀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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