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추석 생각 바꾸어보기
[경일칼럼]추석 생각 바꾸어보기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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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대 인문대학 국문학과 교수

 

 

코로나 돌림병이 쉽게 가라 앉지를 않는다. 연일 모임을 갖지 말라는 문자가 지겨우리만큼 날아오고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에도 가족들은 모이기 어렵게 됐다. 고향 노부모님인들 왜 아들 딸 며느리 손자들이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도 자식 걱정에 오지 말라고 손을 내젓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세상이 됐다.

이런 와중에 지난 주 우리 사 형제는 선산 벌초를 했다. 고향에 도착해 촌에 있는 일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선산을 향했다. 따끈한 가을 햇살이 등에 내려 이마에 땀이 맺힌다. 나고 자랐던 고향집과 마을을 눈에 넣고 걸었다. 솔직하게 처음엔 나도 벌초하는 일이 그렇게 썩 내키지 않았다. 앞으로 저 일을 누가 할까 온갖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어 보았다. 나는 오늘 운동은 선산 야산을 오르는 것으로 대신하는 걸로 생각을 바꾸자고 했다. 찾아갈 고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좋고, 형제가 넷이라 좋고, 벌초를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형제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바꾸니 몸이 덜 힘들었다.

인간은 갈수록 한없이 이기적으로 돼 가는 듯하다. 우리가 부모 기일 하루를 추념할 수 없을 만큼 진짜 바쁠까. 설 추석 일 년 중 이틀 부모 형제 만나는 일이 그토록 힘들까. 그래서 이상한 무슨 명절 증후군이니 뭐니 하면서 온갖 넋두리를 늘어 놓고 우는 소리를 할까. 아내는 남편을 어쩔 줄 모르게 그렇게 몰아 세워야만 할까.

솔직하게 말해서 가기 싫은 시댁이고, 만나기 싫은 동서들이고, 만나기 싫은 남편 가족이고, 빈둥빈둥 노는 남자들 꼴 보기 싫은 거라 말하지 못하고 핑계를 대는 건 아닌가. 정신이 피곤하니 육체도 같이 힘들어 하는 건 아닐까.

또 한편으로 다른 가족과 비교하니 모든 게 싫어하는 건 아닌가. 남편을 비교하고, 자식을, 재산을 비교하니 불행해지고 짜증이 난다.

왜 우리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스스로 남처럼 살아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남들은 어떻게 살든 나는 나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자신은 스스로 패배자가 되고 불행해 진다. 그래서 아무리 가까운 친족이라도 남의 가족에 대해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보자. 명절에 고향과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자란 고향을 보러 가고, 사랑하는 남편을 낳고 기른 부모님을 만나러 가고, 남편이 사랑하는 형제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생각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소풍가듯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소 쉽게 먹을 수 없는 제삿밥과 맛있는 음식들을 손수 만들어 부모님과 남편 형제, 내 자식들을 먹인다고 생각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살아 계셔서 좋고, 든든한 형제들이 있고 동서들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늙어가면 오라는 사람도 없고 반겨 줄 사람도 없어진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돌림병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오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얼쑤하면서 좋아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끼리끼리 놀러간다고 좋아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부모님과 형제 동서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했으면 좋겠고 간단한 선물이라도 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렇게 생각 바꾸기도 쉽지 않다.

임규홍 경상대 인문대학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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