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天上)의 그대에게
천상(天上)의 그대에게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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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가
그대여! 그곳에서 평안하신지요?! 구월은 순교자 성월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 신앙의 밑거름이 된 선조들을 기리는 미사 중 죽음과 순교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미사 중에 그대의 고왔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영혼을 함께 기립니다.

임의 얼굴 생생한데 추억은 아득하니 멀어져 필시 그대는 천상의 사람인가 봅니다. 그대가 남기고 간 흔적은 고요하다 못해 사뿐합니다. 이태 전. 몸에 이상을 느꼈던 그해 가을로 거슬려 가는 길이 왜 안개 속처럼 아득한 느낌일까요?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정리되지 못한 마음은 스산한 바람결처럼 서성입니다.

서울의 병원에서 요양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지만 임의 모습을 마주한 지는 계절이 바뀐 초여름이었습니다. 미리 연락하고 도착한 요양병원이었습니다. 갓 자란 머리카락에 핼쑥한 임의 모습을 떠올리면 새삼 마음이 아파져 옵니다. 며칠째 누워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샤워를 했다는, 말릴 머리카락도 없는 머리에 빵모자를 찾아 쓰며 희미하게 웃는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허둥대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눈매가 참 곱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행히 동행한 남편은 그대가 걷고 있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속속들이 걸어 나온 사람이라 우리는 곧 편안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동병상련으로 ‘기운을 내라’고 격려하며 손에 혈 자리를 찾아 지압봉을 붙이며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했지요.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평온한 마음도 잠시였으나 봅니다.

새해, 정초의 추위는 아직 두꺼운 옷을 벗지 못하게 하는데, 그대는 무엇이 그리도 바빠 황망히 떠났습니까. 그대를 안치한 장례식장은 일월의 날씨처럼 차갑고 휑하였습니다. 엄마의 장례식장을 지키는 외아들이 그대 모습 위로 자꾸만 밟혔습니다. 저 외로운 이이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하지만 너무 염려는 말아요. 아들은 어엿한 청년으로 굳세게 잘 버텨 나갈 것입니다. 그대는 긴 세월 함께 걸어온 나의 문우이자 오래된 벗이었습니다. 장담컨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시월이 옵니다. 그대가 떠난 첫가을입니다. 세상은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로 모두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거리는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사람들의 하얀 물결로 하루를 지탱합니다. 이렇듯 불투명한 나날의 연속이 언제쯤 꼬리를 감출지요. 그대와 함께했던 시간이 그립습니다. 유난히 눈매가 고왔던 그대, 그 고운 눈빛처럼 이곳 세상이 환하게 밝아졌으면 기원합니다. 사랑하오! 그대 영혼에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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