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밥처럼 달곰한 녹색 풍경이 주는 삶의 위안
잿밥처럼 달곰한 녹색 풍경이 주는 삶의 위안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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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청곡사
코로나19.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흐트러진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아 진주 청곡사(靑谷寺)로 향했다.

청곡사를 찾아가기 전에 금호지를 먼저 들렀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는 청곡사를 품은 월아산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주 금산면 용아리와 진성면 중촌리·하촌리 경계에 솟아 있는 월아산은 달빛이 산을 타고 왔다 해서 달 오름산(달음산) 또는 달엄산 불린다.

진주 금산교를 지나 금호지에 이르러 차 시동을 끄자 일상의 긴장이 해방된다. 저수지에 아름다운 월아산의 봉우리들이 한 폭의 수묵담채화처럼 담겼다. 금호지에서 일상 속의 긴장이 풀리자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금호지를 떠나 승용차 5분여 정도 더 가면 청곡사가 나온다. 금호지를 거치지 않아도 남해고속도로로 문산(동진주)나들목에서 5분 정도의 거리면 찾을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산의 넉넉한 기운이 와락 안긴다. 덩달아 일상의 묵은 찌꺼기도 한 꺼풀 벗겨진다. 절의 입구에 있는 일주문으로 가는 완만한 길옆으로 산에서 흘러내린 개울이 있다.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별천지처럼 녹색 짙은 신세계가 펼쳐진다.

숲길 사이에서 걸음을 붙잡는 작은 못이 있다. 학영지는 경북 청송의 주산지를 닮았다. 세월을 켜켜이 견디어온 소나무가 물에 반쯤 담겨 있는데 연등 하나 말라비틀어진 나무에 걸려 있다. 학영지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둘째 왕비인 신덕왕후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청곡사 아랫마을에 살았다는 신덕왕후는 어릴 적 달 밝은 밤이면 거울 보듯 이 연못에 자신을 비춰보기를 즐겼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신의 미모를 고고한 학으로 비유한 덕분에 학의 그림자처럼 비췄다고 학영지라고 불리고 있다.

다시금 경내로 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서 200m가량 경사진 거리를 올라가면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을 지나면 부도가 나온다. 부도 곁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으로 가는 등산로와 절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경내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갈림길에서 방학교(訪鶴橋)를 지나야 한다.

신라 헌강왕 5년(872년) 도선국사가 진주 남강에서 푸른 학이 이곳 월아산 기슭으로 날아와 앉자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한 산과 계곡이 있어 이곳이 천하의 명당이라 절터를 세웠다고 한다.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속계(俗界)를 벗어나 선계(仙界)에 들어선 기분이다.

방학교를 건너자 아름드리나무의 환영을 받았다. 나무줄기 껍질이 온통 초록색 이끼로 물든 나무는 숲의 정령이 나와 머나먼 전설을 들려줄 듯하다. 직선거리로는 몇 걸음 되지 않은 절 내로 가는 길은 굽이굽이 S자 길이다. 덕분에 쉬엄쉬엄 오르면서 나쁜 기억과 생각을 뱉어냈다.

덩달아 함께 걷는 주위 짙은 녹색 풍경이 잠시 500여 년 전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전설로 이끈다. 고려 말 남해안 왜구를 토벌하고 청곡사를 찾은 이성계는 목이 말랐다. 청곡사 아랫마을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물을 청했더니 바가지에 버드나무 잎을 띄어 물 담아 주더란다. 급하게 먹다 보면 체할 것을 염려한 여인의 지혜와 마음씨에 이성계는 아내로 맞았는데 그가 신덕왕후다.

청곡사는 879년 창건된 오랜 세월만큼 몇 번이나 소실되고 중수하기를 거듭했다. 역사만큼 아픔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역사와 전설이 깃든 경내를 둘러보고 승용차가 오가는 길로 내려갔다. 주차장에서 차들이 다닐 수 있는 임도지만 숲속으로 난 까닭에 초록빛으로 샤워할 수 있다. 무성한 녹색 이파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의 정겹기도 하다. ‘샤그락 샤그락’ 오가는 바람에 인사하며 내는 이파리들의 노랫소리가 정겹다. 청곡사에서는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끌립니다. 잿밥처럼 달곰한 녹색 풍경들에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김종신 시민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선 태조와 신덕왕후의 전설이 깃든 진주 청곡사 학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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