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의 ‘정의’ 향후 재판에 구현될까
대법원장의 ‘정의’ 향후 재판에 구현될까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3 1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재모 (논설위원)
 

 

닭이 병아리를 잃고 족제비를 의심해 재판을 걸었다. 족제비 변호는 여우가 맡았다. 재판 전날 원숭이 재판관에게 바나나 바구니 두 개가 전달됐다. 양 당사자 측에서 보낸 거다. 한 바구니에는 바나나가 네 개, 한쪽에는 다섯 개 들어 있었다. 재판에 앞서 재판관이 말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다섯 개를 보낸 쪽에 하나를 돌려주었노라.” 재판에서 닭은 족제비가 병아리 훔치는 것을 봤다는 증인이 세 명 있다고 했다. 이에 여우는 족제비가 훔치는 걸 보지 못했다는 증인 열두 명을 데리고 왔다며 증인의 비율을 유념해 달라고 했다. 결국 “열두 명은 보지 못하고 세 명만 보았다면 피고는 무죄”란 판결이 났다.

돌려줬지만 하나를 더 가져온 쪽이 예뻤을까. 재판관 자기처럼 네발짐승이라서 여우 편을 든 걸까. 억지 논리로 결론을 낸 원숭이 재판 얘기다. 교사 채용건으로 돈 받은 조국 동생이 돈 전달 심부꾼보다 낮은 형을 받은 지방법원 판결이 있었다. 그 계기에 잠시 김명수 대법원도 생각하게 됐다. 그러다가 링컨 대통령이 종종 들먹였다는 이 우화가 왜 문득 떠오르는가.

대법원은 해직교사를 가입시킨 전교조를 법외노조라고 한 처분은 무효라고 최근 판결했다. 노동3권의 권리를 교원노조법 시행령에 근거하여 제한한 것은 위헌이란 논리였다. 시행령 근거가 법일진대 그게 그거 아니겠나 싶은데 이런 판결이 났다. 많은 국민들이 갸우뚱했다. 전교조 합법화 결론에 짜맞춘 법리란 비판의 소리도 컸다.

대법은 친형 강제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죄로 이재명 경기지사에 당선무효형을 때린 고법 판결도 깼다. 무죄라는 것이다. 적극적인 허위사실 공표가 아니면 처벌할 수 없다는, 낯선 논리였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은 은수미 성남시장도 살렸다. ‘항소장에 적법한 항소 이유를 적어넣지 않았는데도 1심보다 무겁게 선고한 것은 위법’이란 논리였다. 시장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시 판결하라고 했다.

지난 4·15총선 때의 부정선거 의혹으로 대법원에 제기된 선거 관련 소송은 139건이다. 대법원은 제소 마감일 140일을 넘긴 이 시점까지 단 한 건의 재판 날짜조차 잡지 않고 있다. 건수가 많고 쟁점이 복잡하다는 게 이유다. 많은 사람들은 부러 뭉그적거리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선거소송은 대법원 단심이며 제기된 날로부터 180일 내에 처리토록 공직선거법은 권고하고 있다. 선거소송을 가급적 빨리 하라는 뜻이다. 하나 이 권고는 물건너갈 공산이 커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최근 “판결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재판에 집중해 정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지난 주 ’법원의날 기념사’에서다. 갈등과 대립이 첨예한 때일수록 사법부 독립의 가치는 더욱 소중하다고도 했다.

대법원장이 법관들에게 한 당부치고는 특별한 말도 아니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광복절 광화문 집회를 허용한 판사를 총리·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정부측과 여권 정치인들이 전방위 공격한 사실을 염두에 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더이상 코드판결을 않아야겠다는 자성인가. 혹은 새삼스런 사법부’독립선언문’인가. 아니면 그냥 가볍게 립서비스로 해본 ’비겁한 뒷북’인가.

이념 편향성이 끼어들기 좋을 만한 재판들이 멀지않아 열리게 되어 있다. 조국 전 법무장관 내외, 윤미향 민주당의원, 김경수 경남지사, 송철호 울산시장과 송병기 전부시장, 유재수 전 부산부시장…. 이들의 1, 2심 혹은 3심 재판이 줄줄이 열릴 것이다. 김 대법원장의 ’흔들리지 말고 정의 실현’ 하자는 당부가 이들 재판에 얼마나 녹아들지 궁금하다. 하긴 열거한 재판들에 대한 관심 증폭의 계기가 된 것만으로도 대법원장 발언은 한몫 한 셈인지 모른다.

정재모/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