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MRO 사업, 그리고 20년 전의 기억
항공MRO 사업, 그리고 20년 전의 기억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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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돈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산학협력처장)
요즘은 디지털 디바이스에 기억력을 의존하며 살아가는 시대이다. 가까운 사람들의 전화번호든 기념일이든 대부분의 중요한 것들 또한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항공업계에 종사하며 잊혀지지 않는 날짜가 하나 있다. 1999년 10월 1일이 바로 그 날이다.

그날은 바로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3사가 통합하여 한국항공우주산업(KAI)으로 출범한 날이다. 1997년 말 불어닥친 외환위기로 인해 자립할 수 있는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은 수많은 기업들이 폐업이나 인수합병을 통한 혹독한 구조조정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당시 걸음마 단계였던 항공제조업은 단순한 민간회사의 미래 수익창출 수단이라기보다 국가의 기간산업이자 방위산업인 만큼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자립할 수 있을 때 까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절실하였고 그러한 국가적인 결정이 빅딜을 통한 3사 통합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통합 후 처음 10년은 안정적인 군용기 물량으로 기술력을 축적하고 원가를 개선하여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간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11년 기업공개(IPO)를 통해 재정적으로 자립하였으며, 당시 연간 매출액 1조원 수준에서 이후 10년간 3배로 성장하여 2019년에는 3조1천억원에 이르렀다. 올해는 B737 맥스 생산중단 여파나 코로나19로 인한 민항기 부품 수주급감 사태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 유일의 항공기 체계종합 업체로 대한민국 항공제조업의 생태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완제기에 대한 항공제조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설계, 제작, 시험평가, 유지보수(MRO)의 네 단계로 구분하여 나타낸다. KAI가 출범하고 지난 20년간 설계, 제작 분야에 대한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실이 사천을 중심으로한 서부경남지역 항공산업단지로 자리잡았다. 항공기에 대한 시험평가나 항공부품에 대한 인증분야도 최근 몇 년 사이 체계를 갖추었다. 2017년 말 국토부 공모에서 KAI가 MRO 사업자로 최종 선정된 이후 2018년 자회사인 한국항공서비스(KAEMS)가 출범하여 네 단계의 마지막 단추를 끼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인천지역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직접 MRO사업과 항공종사자 교육훈련 등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인천국제공항공사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고 있다. 민항기는 인천, 군용기는 사천으로 각각 MRO 물량을 나누자는 식의 논리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한 논리라면 국토부에서 지정하여 2018~2027년에 걸쳐 3469억원이 투입되어 311,880㎡ 규모로 조성되는 국가 항공MRO단지가 KAI의 AS센터 역할밖에 못하는 셈이 된다.

여기서 인천을 주장하는 측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이 세가지 있다. 첫째는 사천항공산업단지의 민수 매출 비중이 이미 군수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더 이상 민항기는 인천에서, 군용기는 사천에서라는 논리를 펴지 않았으면 한다.

둘째는 항공제조업과 항공MRO가 별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항공기의 중정비나 개조 등을 고려한다면 항공제조업 집적지가 부품정비사업의 최적 입지라 할 수 있다. 인천은 기존의 운항정비만 수행하고 사천에서 중대규모 계획정비를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

셋째는 항공제조업 초기에 겪은 중복투자에 의한 뼈아픈 구조조정을 20년이 지난 지금 꼭 교훈으로 새겨봐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에게는 추석인 올해 10월 1일에도 가을 볕 아래에서 회사 잔디밭에 도열하여 창립기념일 행사에 참석했던 1999년의 그때가 선명히 기억날 것이다.
 
양희돈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산학협력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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