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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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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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령 (사천문화재단 팀장)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필자에게 깊이 스며든 이 말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조 15년에 나오는 말로 “춘정월(春正月) 작신궁실(作新宮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라 기록되어 있다. 내용인즉슨 봄 정월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으로, 백제의 소박하고 담백한 문화와 정신을 의미한다. 이 세련된 표현은 어디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의미로 다가왔으며 삶의 여러 영역에 적용하고 있다.

첫 번째로 ‘말의 신중함’ 이다.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수정하거나 되돌릴 수 없다. 그러기에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말은 인간의 대표적인 소통의 행위로서 자칫 화자의 느낌, 감정이 물들여져 버리면 상황을 왜곡하기도 혹은 친밀감과 신뢰를 쌓고, 갈등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처럼 말은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신중해야 한다. 말의 메시지는 분명하되 겸손하게 말하며, 지나친 말보다는 적절한 침묵을 택해야 하겠다.

두 번째, ‘관계의 거리’ 이다. 가족, 친구, 동료 등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갖게 하며 관계의 친밀도와 지속력을 높아지게 한다. 상대방이 멀어진다 싶으면 당기고 너무 당겼다 싶으면 조금은 거리를 두는 그런 유연한 관계를 통해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존적인 본연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으며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물건을 대하는 마음’ 이다.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보다는 절제하며 현재 가진 것들에 만족하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시시때때로 새롭고 좋은 것들이 업데이트 되는 요즘, 한눈을 팔면 충동적인 지출을 하게 되는 것은 순간이다. 그러나 이런 소비로 생긴 물건들은 그 쓰임과 사용기간이 오래가지 않을 때가 많다. 현재 가지고 있는 물건을 소중히 다루고 겉치레보다는 본질을 중요시하며 내면을 공고히 해야겠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상황 속에서 균형 있는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균형추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필자는 자극적이고 화려한 생활보다는 온아하고 담백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박혜령/사천문화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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