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1]진주농민항쟁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11]진주농민항쟁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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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최초의 민중가요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진주 망건 또 망건/짝발이 휘양건 도래매 줌치 장도칼/

머구밭에 덕서리 칠팔월에 무서리 동지섣달 대서리



철없던 어린 시절, 뜻도 모른 채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불렀던 이 노래는 류계춘 선생이 지은 혁명가이자 민중가요이다. 하지만 이 노래가 생겨난 유래와 노래 속에 담긴 의미를 안 뒤부터 차마 이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이걸이 저걸이 갓걸이’란 양반의 갓을 걸어두는 역할밖에 안 되는 농민의 처지를 한탄한 것이고, ‘진주 망건 또 망건’은 뇌물을 주고 벼슬을 산 가짜양반들까지 농민을 수탈해 가는 정도가 극심함을 의미하며, ‘짝발이 휘양건’은 짝 벌어진 휘양건(미투리에 쓰는 방한구)처럼 양반과 지방관리들이 부정축재를 위해 폭정을 일삼았음을 뜻하고, ‘도래매 줌치 장도칼’은 양반과 관리들이 돈과 식량을 모으기 위해 악랄하게 농민을 수탈했음을 뜻하며, ‘머구밭에 덕서리’란 백성들을 의미하는 머구밭에 서리가 내렸으니 이는 아전들이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행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칠팔월에 무서리’와 ‘동지섣달 대서리’는 삼정제도의 폐해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하도 심해 백성들의 삶이 매우 궁핍해져 있는 상황을 말함과 함께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고자 하는 농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노래는 ‘참’이라고 한다. 이 노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노래 속에 담긴 농민들의 아픔과 진주정신을 만나기 위해 멀구슬문학회 회원들과 함께 진주농민항쟁의 발상지를 찾아 떠났다. 탐방은 최초 진주농민항쟁의 뜻을 모은 곳(나동면 내평마을)-류계춘 선생 묘소(대평면 당촌마을 뒷산)-진주농민항쟁기념탑(수곡면 창촌마을)-동학혁명군 위령탑(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고성산) 순서로 했다.

 
 
◇동학혁명의 도화선이 된 진주농민항쟁

조선 말기에 조세제도가 문란해지고 수령과 아전의 비리와 토호의 수탈이 심해지자 이에 대항해 주민들이 장시를 철거하고 집단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 진주농민항쟁은 1862년 2월 14일 덕산장 공격을 계기로 진주목 전 지역으로 확산하다가 2월 23일 농민군이 해산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이 항쟁의 핵심 세력은 농민, 그중에서도 초군(나무꾼)이었다. 이 항쟁을 이끌었던 지도자로는 양반 출신의 류계춘 등이 있었다.

이 항쟁을 계기로 농민항쟁은 삼남지방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단순히 수탈에 대한 불만에 의해 폭발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당시의 사회 체제를 바꾸려는 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농민층의 사회운동은 더욱 거세어져 32년 뒤 1894년 동학혁명으로 이어지고 이어 일제시대 농민운동으로 발전해 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이러한 진주농민항쟁은 세상을 바꿔 놓는데 큰 역할을 했다. 먼저 류계춘 선생 등이 모여 항쟁을 논의했던 곳인 나동면 내평마을을 찾았다. 마을은 진양호 물밑에 잠겨 있고 농민운동에 참여했던 이명윤 선생 가문의 재실만 호숫가에 남아 있다. 맑은 호수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윤슬만 반짝이고 있었다.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의 비밀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수대교를 건너 수곡 방향으로 4km 쯤 되는 지점인 수곡과 대평 갈림길에서 수곡 방향으로 200m 정도 와서 대평면 당촌마을 뒷산에 있는 류계춘 선생 묘소를 찾았다. 경상대 김진형 교수로부터 전화통화로 자세한 안내를 받은 덕분에 선생의 묘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처음 찾는 탐방객들을 위해 표지판을 세워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직전이라 후손들이 벌초를 깔끔히 해 놓았다. 무덤 왼켠에 진주농민항쟁을 이끈 류계춘 선생의 묘비가 세워져 있고, 묘비엔 선생께서 직접 지어 부른 민중가요인 ‘이걸이 저걸이’가 새겨져 있었다. 필자의 은사님이신 시인이자 소설가인 정동주 선생께서 지은 비문을 서예가 윤효석 선생이 단아한 글씨체로 써 놓았다.

류계춘 선생의 묘소에서 진주농민항쟁 기념탑이 세워진 창촌까지 자동차로 약 20분 정도 걸렸다. 탑을 세워놓은 공원은 당시 수곡장이 서던 곳으로 항쟁이 시작되기 전인 2월 6일 많은 민중들이 모여 항쟁의 방향과 세 확산에 대해 의논했던 중요한 장소다. 우뚝 솟은 기념탑은 밑동이 나선형의 계단으로 되어있다. 그 계단을 밟고 하늘로 올라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항쟁의 정신을 구현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념탑 주변에는 거사에 참여해 목숨을 잃은 민초들의 이름을 새긴 표석이 기념탑을 울타리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목이 잘린 채로 끝까지 자신들의 꿈을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해 콧등이 찡해왔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기념탑 옆에는 정동주 선생께서 쓴 시 ‘하늘 농부’가 빗돌에 새겨져 있다.



농사는 하늘 뜻 섬기는 일/ 농부는 사람을 섬기는 하늘이외다/ 하늘보고 침 뱉지 말라/ 사람이 곧 하늘이니/ 人乃天(인내천)

진주농민항쟁이 박제된 역사로 묻힐 수도 있었던 것을 정동주 선생이 ‘백정’이란 대하소설을 통해 살아있는 역사로 소생시켜 놓았다. 진주농민항쟁을 동학혁명의 불쏘시개로 자리매김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반란군이란 오명을 벗겨 정의와 진실을 위해 목숨 바친 농민군을 거룩한 순교자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진주농민항쟁 기념탑 옆으로 흐르는 덕천강 건너편 하동 옥종면 북방리에 있는 고성산 이마에 우뚝 솟은 동학혁명군 위령탑의 횃불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동학혁명 때 서부경남 농민들이 고성산성에서 일본군에 저항하다 농민군 186명이 전사한 곳이다. 마침 눈시울을 붉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이땅의 그늘진 역사를 가을볕에 내걸며 ‘사람이 곧 하늘’임을 일깨워 주신 은사님을 뵈러 사천시 용현을 향했다.



/박종현 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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