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벌초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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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가)
 

 

시월의 문턱, 가을 들판은 황금 물결로 익어간다. 추석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와 조상 산소에 벌초를 서두른다. 수시로 중대본에서는 안전 안내 메시지가 들어온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벌초나 성묘는 대행업체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한다. 용케도 일가친척 중에는 먼 곳에서 오는 이는 없다. 시집의 윗대 문중 산 벌초는 집안사람들이 모여서 한다. 별도로 떨어져 있는 시아버님과 친정의 어머니 묘는 남편과 둘이서 품앗이를 하듯 한다. 시댁과 친정 모두가 서로의 일이지만 벌초만큼은 먼저 서두르게 된다.

이번 벌초는 친정어머니 산소부터 들렸다. 우거진 나무와 숲이 앞을 가리고 풀 섶에 쌓여 길이 사라졌다. 그가 예초기로 풀을 베고 길을 뚫어서 나가면 뒤에서 낫으로 헤쳐서 간다. 소를 키우고 아궁이에 불을 때던 어린 시절에는 수풀이 우거질 틈이 없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틈만 나면 꼴망태나 지게를 짊어지고 들과 산을 오르내렸다. 예초기에 시동이 걸리자 순식간에 풀숲이 시원하게 잘린다. 가지런하게 풀이 깎인 어머니의 무덤은 훤하다. 정갈한 기쁨은 숲속에서 긁힌 팔목의 상처에 처방 약이 된다.

어머니는 예초기도 없이 일일이 낫을 들고 벌초를 하려 다녔다. 자식들은 직장 따라 객지로 떠나고 홀로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흩어져있는 조상의 묘를 찾아서 성묘했다. 당신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윗대 조상들의 묘를 아버지 묘가 있는 선산으로 손수 이장을 했다. 또한, 자식들이 성묘할 때 오가며 쉴 수 있는 쉼터로 오두막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남은 한 가지 소원은 당신이 돌아가실 때 아버지와 합장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구순의 연세에 돌아가시며 꿈을 이루었다.

양지골 어머니의 무덤 앞이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산소 앞에 앉아서 육십 평생 내려다본 등골 골짜기를 내려다본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 횟수일 테지만 이곳은 세월의 변화가 없다. 오랜 기억이 추억으로 각인되어서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저 아득한 논두렁길에 알록달록 수십 개의 만장이 들판을 덮었다. 어머니가 느꼈을 아득한 슬픔이 까마득한 기억의 창고로 남아있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친정 벌초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 부부의 건강이 하락하는 날까지는 양가 부모님의 성묘는 남편과 품앗이를(?) 할 일이다. 장례문화가 변화하여 간다. 점차 조상의 산소에 벌초하는 정겨운 모습은 옛일로 살아져 갈 것이다. 한그루 나무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다. 한 줌 흙으로.

허정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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