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재앙의 ‘인포데믹스’
전염병 재앙의 ‘인포데믹스’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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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었다. 원인도 모른채 피부에 생긴 검은 반점 때문에 흑사병(The Black Death)으로 불린 이병은 ‘페스트(Plague)’가 맞다. 한참 후에야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페스트균이 옮겨져 발생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으로 확인 됐다.

사망자 수는 1347년부터 1352년까지 유럽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0여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5년 동안의 유행기간에 그토록 피해가 극심했던 이유는 한번 발병하면 짧게는 6시간, 길면 닷새 안에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4세기 유럽의 흑사병은 유럽 사회구조를 붕괴시켰고 나아가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처음엔 발병원인을 몰랐던 흑사병은 어처구니없는 마녀사냥을 불러오기도 했다.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서 흑사병이 퍼진다는 소문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집단 학살을 당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손을 자주 씻기 때문에 병에 걸릴 확률이 낮은데도 유대인들이 흑사병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근거 없는 소문 때문이었다. 흑사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전가한 희생양적인 폭력이다. 한센병 환자들이 흑사병을 몰고 다닌다는 이유로 집단폭행이나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전염병 못지않게 희생자를 낳는 것이 ‘인포데믹스’다. 인포데믹스는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보전염병’으로 불리는 인포데믹스(Infodemics)는 ‘정보(Information)’과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로서 위험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행동에 관한 루머들이 인터넷, 휴대폰 등 IT기기나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 근거 없는 공포를 증폭시키는 폐해를 말한다.

대재앙은 근거 없는 민간요법이나 터무니없는 흉흉한 소문을 몰고 온다.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에서의 인포데믹스는 국가안보와도 직결되어 있지만 질병과 관련한 괴담도 만만찮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진다. ‘코에 바세린을 바르면 바이러스 침투를 막을 수 있다’는 비과학적인 치료방법이라든가, 확인되지 않은 메르스 확진자와 감염자 명단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탈 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사회적 환경에 있어서 진실은 더는 중요하지 않고, 공포와 우려 등 부정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이다. 앞으로 인포데믹스 현상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정보생산자가 네트워크를 통해 더 쉽게 정보를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루머로 치부하기에는 사회적, 경제적인 파장이 너무 크다. 그 대안이 심도 있게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소셜 미디어상에서의 괴담 유포가 프라이버시 침해와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행위임을 인식하도록 범국민적인 캠페인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새벽 산들바람은 여전히 인적이 드문 도시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많은 가게가 닫혀있다. 곧 열리지는 않을 것이다”페스트 때문에 폐쇄된 프랑스 도심의 모습을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지금은 소설이 아닌 현실 이야기다.

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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