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30]바누아투 대가족의 큰 사랑
도용복의 세계여행[30]바누아투 대가족의 큰 사랑
  • 경남일보
  • 승인 2020.09.2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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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장소에서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들
 

전통음료 카바 시음기(상)

솔로몬제도 일본 전쟁박물관 앞에 금빛 번쩍이는 옷을 입은 여인과 중년남녀가 있었다. 둘은 솔로몬 아일랜드에 사는 부부였다. 바누아투 아낙네를 만나 그 여자의 남편을 소개받았다.

이어 공항에 있는 국기게양대 위에 바누아투 국기를 관찰하다가 사진을 찍었다. 국기를 보며 짧은 비행으로 실감하지 못했던 국가를 넘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먼 발치에 노란색 봉고차 한대가 공항 입구를 지나오고 있었다. 나를 알아봤는지 급히 문이 열렸다. 나와 비슷한 키에 몸무게는 두 배가 될 것 같은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서둘러 내리며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바누아투에 오신 걸 환영 합니다”, “땡큐, 땡큐! 아임 레미! 도레미파솔라시도~ 도레미! 이름이 뭐에요?”, “저는 제넥입니다. 여기 운전하는 친구는 존입니다. 바누아투에는 각자 언어가 다른 4개의 섬이 있는데, 이 친구는 영어를 할 줄 몰라요. 반갑습니다”, “하하, 반가워요.”

제넥은 나를 숙소에 데려다 주려했다. 갑자기 바누아투 현지인들의 생활이 궁금했다. 그래서 “당신 집에서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오늘은 함께 섬을 둘러볼 수 있을까요?” 그가 대답했다. “네? 오늘은 숙소까지만 모셔다 드리려고 했는데, 원하시면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저희 집은 좀…,” 그는 왠지 말꼬리를 흐렸다.

차는 많이 낡았다. “잠깐 멈춰주세요!” 갓길에 바로 차를 세워주었다. 겉보기에 멀쩡한 차들이 도로가 수풀지대 군데군데 방치돼 있었다. 사람은 없었다. 섬나라에 와서 느끼는 것인데, 대부분 차가 외관은 깨끗하지만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고물이었다. 아무데나 차를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바누아투 곳곳에는 버려진 차들이 많았다. 차 내부를 보면 쓸 만한 것은 또 누군가가 빼간 상태다.

“저는 항상 현지인들과 숨 쉬고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잡니다. 그저 몸을 눕힐 공간만 주시면 짐 가방 베고 자면 됩니다”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족들이 많아서 정말 불편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힘찬 나의 대답을 끝으로, 그렇게 우리는 재빨리 달렸다. 하지만 제넥의 뒷말이 머리를 때렸다. “노모도 집에 함께 계신데 정신질환과 피부질환도 있습니다”, “아 그래요?” 조금 전 그가 말꼬리를 흐린 이유를 그때 알았다. 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정신질환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부질환은 자칫 잘못하면 귀국해서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결정이 쉽지 않았다.

일정대로라면 귀국하는 날에 맞춰 전국 고등학교 교장 협의회와 한국수력원자력센터 인재개발원에 강의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피부질환이라도 걸려 격리조치라도 된다면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신세가 될 것이다. 거기에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와 약속을 깨는 결과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정을 알았는지 제넥은 다시 제안해왔다. “오늘은 저렴한 홈스테이형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고 내일 제가 어머니의 질환이 외부인에게 괜찮은지 의사선생님과 상의해보고 괜찮다고 하시면 저희 집으로 모시도록 하면 어떨까요?”, “아, 현지인들만 머무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나요?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1분도 채 안돼 마당이 넓은 가정집같은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깔끔한 걸요?” 날씬한 체형에 약간 굽은 등을 가진 주인아주머니가 나와 맞이해주었다. “어디서 오셨나요?”. “한국에서 왔어요! 레미라고 해요”, “오, 한국인은 처음 봬요, 들어오세요”

방은 괜찮았다. 그러나 이 나라 특유의 체취가 났다. 화장실은 세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바퀴벌레 무리가 순식간에 숨어들어가는게 보였다. 변기 커버도 없고 바닥주변에 시멘트도 직접 발랐는지 투박했다. 청소는 언제 했는지 모를만큼 묵은 때와 곰팡이가 서려 있었다.

“1박에 8000원만 주세요”, 방값은 저렴했다. 섬나라는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하기에 물가가 높다. 하지만 인터넷도 안 되고 아침밥은 마트에서 사는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어서 흥정을 해 5000원으로 깎았다. 3000원은 번 셈이니 이 돈으로는 마트에서 아침에 먹을 과일과 계란 빵 하나만 사면 해결이다. 들뜬 표정으로 숙소를 정하고 나와서 다시 차에 올랐다.

“레미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정말 마음에 드네요, 고마워요 제넥, 그래도 내일 댁에서 머물 수 있는지는 한번 확인해주세요.”

“물론이죠. 자 출발 하겠습니다.”

바누아투 국립묘지를 지날 때였다. 사람들이 무덤가에 많이 모여 있었다. 무덤 각각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꽃장식이 가득했다.

“제넥! 사람들이 무덤가에 왜 이렇게 모여 있나요?” 그곳 무덤가에는 가족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무덤 위에는 회색빛 액체가 담긴 플라스틱 생수병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탐험가 레미라고 합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해 부모님들께 인사도 드리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모였다고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지금의 자신이 있게 해준 부모님 혹은 조상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그들을 보며 가슴이 짠했다.

좋은 날 감사한 분들이 행복해야 자신들도 행복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꼭 이런 날이 아니라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무덤가를 찾는다고 한다. 아름다운 바누아투의 전통을 이야기하며 가족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있자 회색음료가 가득담긴 페트병을 내밀었다.

“이건 바누아투의 카바라는 음료입니다. 신성한 음료에요. 한번 드셔보세요!”

“혹시 술인가요? 알코올이 들어있을까요?”, “바누아투 전통음료수입니다.”

전통음료라는데 안 마셔볼 수가 없어 한잔 가득 들이켰다. 아무 맛이 없었다.

무맛에 나무향 나는 카바를 원샷 하자 모두가 박수를 쳐주었다.

그런 후에 차에 올랐는데 혀가 얼얼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마약을 먹은 건가?

이들이 사실 집단 조직 강도인가 싶어 서둘러 정신을 차리려하자 그 기색을 눈치 챘는지 제넥이 웃었다.

“편안하게 있어요.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음료라서 느낌이 이상하실 텐데 괜찮습니다.” 그렇게 혼미한 정신을 다잡기 위해 눈을 부릅떴지만 정신이 몽롱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넥은 바누아투의 중국식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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