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개천예술제 궐제(闕祭)에 부쳐
[기고]개천예술제 궐제(闕祭)에 부쳐
  • 경남일보
  • 승인 2020.10.0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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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홍 (진주예총회장)
진주의 하늘은 청명하고 남강은 호기(豪氣)롭다. 시월은 늘 이렇게 시작되었고 우리 예술인들의 붉은 열정을 담은 개천예술제(開天藝術祭)가 당당하게 세상을 열었다.

1949년 독립 1주년을 기리고 민족의 문화예술을 되살리기 위해 파성(巴城) 설창수(薛昌洙)선생을 비롯한 발기인들이 지혜를 모아서 영남예술제를 만들었다.

그것은 문화예술과 얼을 담는 이 나라 지역 예술제의 처음이 되었고 역사적인 예술제의 효시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개천예술제 창제 정신은 우리 진주의 자랑이며 이 나라 문화예술의 거대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 나라 예술계의 명망가들은 대부분 이 개천예술제라는 등용문(登龍門)을 거치었고 이를 지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활동을 하고 있다. 예술제의 효시 개천예술제는 경남 뿐만 아니라 영남 일원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가슴을 설레게하며 진주로, 진주로 발길을 이끌었다.

그리고 70여년이 흘렀다, 6.25전쟁에 한 해를 걸렀고 1979년 前 박정희 대통령 서거 때도 한 해를 쉬었다. 국난에 흥이 있는 잔치를 할 수 없다는 게 명분이었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올 한해 또한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궐제(闕祭)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참으로 많은 고민과 머리를 맞대고 중지를 모아 봐도 창궐하는 역병에 이 거대한 행사를 감행하기에는 그 책임과 결과가 너무 엄중하기 때문에 난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올 해는 개천예술제 70주년으로 역사에 큰 획을 긋는 막중한 일들로 더욱 준비가 많았고 시 당국에서도 예년과 달리 재정을 확보하여 새로운 시작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개최하지 못하는 그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더욱 크다.

무엇보다도 예술제 경연대회를 목표로 준비해 온 예비 예술인들의 기대를 허무는 일이라서 더욱 고민스러울 밖에 없었다.

그러나 참여자들의 안위는 물론 우리 예술인들을 위험의 현장으로 보내야 하는 괴로움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긴 역사 속에서 때로는 우리의 치열한 활동이 일부 가려져 있는 오해도 있었고 답습에서 오는 진부함의 지적도 있었지만 문화예술의 큰 흐름은 꾸준하게 길고 큰길을 가야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예술은 단순한 흥행꺼리나 유행에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천예술제의 슬하로 유등축제와 드라마 페스티발이 시작되었고 진주의 10월은 축제의 도시로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진주의 문화유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되고 인문도시로 승인을 받았다. 곧 문화도시로 득하는 과정들도 출발점은 여기부터였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우리 개천예술제를 모방한 지방예술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변별력이 부족할 수도 또 희소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전통의 예술을 보호하고 예술의 근본을 건사하는 개천 예술제를 능가하는 행사는 없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개천 예술제는 진주의 예술인에게는 신앙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진주 시민에게는 영원한 자존심이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재난으로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이번 70주년 개천예술제 행사를 전면 취소하는 그 책임의 무게를 감당한다.

모쪼록 겸허히 역사의 회초리에 종아리를 걷어 올리며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깊은 이해를 구하면서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주강홍/진주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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