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한 여성학자를 애도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한 여성학자를 애도하며
  • 경남일보
  • 승인 2020.10.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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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진주여성회 대표)
BBC방송, 로이타 통신에 따르면 올해 9월 21일 인도에서 딸인지 아들인지 알기 위해 임신한 아내의 배를 갈라 중태에 빠뜨린 40대 남성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다섯 딸 이후 아들을 원한 인도 남아선호사상에 의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또한 인도에서는 성별불균형으로 인해 결혼적령기 여성 2명당 40명의 남성의 비율로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전했다. 많은 이들은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여성 태아를 죽인단 말이야 생각했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아직도 그 역사로 인해 성불균형으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1994년에는 신생아의 여남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15명이었다. ‘내 제사를 지내 줄 사람은 아들이다. 아들을 낳아야 대를 이을 수 있다’ 같은 가부장적 사고에 갇혀 부모의 선택으로 당시 3만명의 여태아가 살해당했다. 우리나라에도 태어나기도 전에 성감별로 인해 여자아이면 낙태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1997년 3월 9일 이런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문제제기하고 대안으로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제시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제13회 한국여성대회 폐회 직전, 故이효재 대표가 발표한 선언문이 시작이었다. 이효재 대표는 “태아 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로 인간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통탄하면서 남아선호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부모 성 함께 쓰기 선언을 채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을 명시한 가족법의 개정과 여성의 정치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을 지속하는 한 방편”이라고 설명했다.(여성신문 1997년 3월 21일 제417호) 이런 움직임들이 성비불균형 완화, 가부장제 사회의 문화개선으로,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게 했다. 한 사람의 한 걸음이, 두 사람의 두 걸음으로, 여럿이 함께 하는 발자국으로 바뀔 때 사회는 희망을 꿈꿀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제 역할을 하며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10월 5일 저녁 7시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이이효재 선생(1924-2020) 추모식이 열렸다. 우리나라 최초로 이화여대에 여성학을 도입하고 여성단체를 이끌며 평생 여성운동가로서도 깊은 발자취를 남긴 故 이이효재 선생님을 깊이 함께 애도한다.

생전에 이이효재 선생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어렵지 않고 친숙하고 낯설지 않는 이름이다. 다양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부모성 같이 쓰기 외에도 호주제 폐지,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례대표제 도입, 차별호봉철폐 운동 등등 1세대 여성운동가로 늘 앞서 걸어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학자로써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자주 부르며 분단된 조국을 걱정하셨다는 이야기는 자주 회자되고 있다.

한 길을 가다보면 만나는 사람이 있다. 그 길이 내 삶이 아닌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세상을 열어가고자 했다면 빛나는 길이다. 그 빛나는 길에 맨 앞에 서 주신 이이효재 선생님을 추모한다. 앞으로 그 빛을 의지해 어둡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자 애쓰는 이들과 연대해 나아 갈 것이다. 평생을 차별받지 않고 소외되는 사람 없도록 우리 사회를 걱정하며 몸소 몸으로 실천해 오신 이이효재 선생님의 삶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이 헛되지 않도록 성평등의 주춧돌을 함께 쌓아주시길 희망한다. 가까이는 여성과 더불어 모두가 행복한 도시 진주 한걸음 더 나아가 성평등한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존중받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으니까!
 
박혜정 (진주여성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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