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에서 자란 나는
온실 속에서 자란 나는
  • 경남일보
  • 승인 2020.10.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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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빈 (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어린 시절에 나는 사고 싶은 물건을 보면 마트가 떠나갈 정도로 울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집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던 기억이 선명하다. 부모님은 나를 달래려 어쩔 수 없이 장난감을 사주었다. 내가 좀 자랐을 땐 사회생활을 배웠다. 사춘기인 나는 유행 하나하나에 반응했다. 집에 가서 부모님 기분을 살피고 사고 싶은 옷, 신발, 가방 등을 얘기하며 졸랐다. 부모님은 비싸다고 하면서도 항상 사줬다. 나는 그렇게 자랐다. 부모님이 만들어준 그늘 속에서 내 마음대로 살았다. 돈, 마음 어느 것 하나 독립하지 못했다. 가끔 민망한 기분이 들 때면 ‘미성년자니까 괜찮아’라는 말로 나를 다독였다. 20살이 되고 나 자신을 위로하던 말이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독립해야 했지만, ‘대학생도 학생이다’라며 그늘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다. 솔직히 말해 그늘을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 내가 보고 배워야 할 친구가 생겼다. 친구는 세상 속에서 비바람을 맞는 새싹 같았다. 친구를 보며 내가 있는 곳이 그늘이 아닌 온실이란 걸 깨달았다. 온실 속에서 그녀를 보면 한없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부모님 도움 없이 시작한 타지 생활을 유쾌하게 이어갔다. 물론, 내가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다. 내색하지 않는 친구를 보고 있으면 조금은 나에게 힘든 점을 얘기해주길 바랐다.

어느 날 친구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난 친구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온실 속에서 내가 가진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무능하다고 느꼈다. 이후에 난 혼자 설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로 했다. 절대 하지 않으려 했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다. 친구가 금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와주고 싶었다. 어쩌면 친구를 닮아가고 싶은 나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20살이 되면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일에 완벽하지 못하고 여전히 서툴다. 나도 나름 힘든 일을 겪으며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단 것을 느낀다. 주위에는 일찍이 사회에 나간 친구가 많았다. 그들 앞에선 힘들다는 말을 섣불리 꺼내지 못한다. 나의 힘듦과 그들의 힘듦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옆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게 온실에서 나오면서 다짐하고 새긴 각인이다.

박예빈(경남대학보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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