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나들이[36]
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나들이[36]
  • 경남일보
  • 승인 2020.10.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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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갈맷빛 거먕빛 날빛
덥다는 말을 한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아침저녁에는 서늘해서 이불을 찾아 덮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야말로 가을로 접어든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 거죠. 그런데 가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게 또 있습니다. 요즘 누리어울림마당(에스엔에스)에 많은 분들이 ‘아~ 가을이다’ 하시면서 하늘을 찍어서 올려 주시더라구요. 여러분은 가을 하늘을 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제 둘레 사람들은 ‘파란 하늘’이라는 말을 많이 하시던데 저는 그런 하늘을 보면 ‘쪽빛’이라는 토박이말이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하늘을 보고 ‘파란 하늘’이라는 말과 함께 ‘쪽빛 하늘’이라는 말도 쓰며 살 수 있게 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느 때에 이 말을 듣거나 보는 것은 좀 어렵고 말꽃 지음몬(문학 작품)에서는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날살이에서도 얼마든지 쓰며 살아도 좋은 말이지요.

그런데 이 ‘쪽빛’이 왜 ‘쪽빛’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쓰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걸 보거나 들은 사람이 궁금해서 물을 텐데. 쓰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궁금해 하는 사람도 적은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쪽빛’은 ‘쪽’이라는 묻살이(식물)를 가지고 물을 들이면 나오는 빛이 하늘빛과 비슷하기 때문에 하늘을 보고 ‘쪽빛’이라고 한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남색’할 때 ‘남’이 한자로 ‘쪽 람’ 또는 ‘쪽 남’이죠. 가을 하늘을 보고 ‘쪽빛’이라는 말을 떠올린 김에 오늘은 ‘빛’과 아랑곳한 토박이말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름에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로 ‘갈맷빛’이라는 말을 알려드리곤 합니다. 저희가 만든 토박이말 달력을 가지고 계신 분은 아마 더 잘 생각이 나실 겁니다. ‘갈맷빛’은 ‘짙은 초록빛’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도 ‘갈매’라는 나무의 잎 빛깔을 보고 만든 말이랍니다. 하지만 갈매나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갈맷빛’이라는 말도 모르고 잘 안 쓰는 것 같은데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열매는 약으로도 쓰고 나무껍질과 열매는 노란 물을 들일 때 쓴답니다.

다음으로 알려 드릴 말은 ‘거먕빛’입니다. 요즘은 먹은 게 얹혀 속이 답답하면 약을 먹기 때문에 이런 빛깔을 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속이 안 좋다고 하면 어머니께서 바늘로 손가락 따 주시곤 하셨거든요. 그런데 손가락을 따면 붉은 빛의 피가 아닌 검은 빛이 더 많은 피가 나왔는데 그런 피의 빛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거먕빛’입니다.

‘거먕’은 ‘검다’의 ‘검’에 ‘양’을 더한 말입니다. 이 때 ‘양’은 하얀 빛깔을 나타낼 때 쓰는 ‘하양’의 ‘양’과 같습니다. 이런 말이 나올 때마다 드리는 말씀이긴 한데 소리 나는 대로 적다 보니 이런 말밑을 알기가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에 저는 ‘검양’이라고 쓰고 ‘거먕’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말집 사전에도 ‘거먕’이 올라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더 좋은 것인지 따져보고 바로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빛’이 들어간 토박이말에 ‘날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날빛’이라는 말을 처음 본 사람들 가운데 ‘날다’, ‘날개’와 이어지는 말이 아닌가 하는 분도 있었는데 ‘날개’와는 좀 먼 말입니다. 날빛의 ‘날’은 우리가 한자를 새길 때 흔히 ‘날 일’, ‘달 월’이라고 하는데 ‘날 일’ 할 때 ‘날’입니다. ‘일’ 하면 ‘해’를 얼른 떠올리게 되는데 ‘햇빛’을 ‘날빛’이라고도 했었다는 거죠. 하지만 대중말(표준말)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햇빛을 받아서 나는 온 누리의 빛’이라는 뜻으로는 ‘날빛’을 인정하고 있지요. 저는 ‘햇빛’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날빛’이라는 말도 대중말로 삼아 널리 쓰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쓰는 사람의 느낌에 따라 두 말을 골라서 쓰게 하면 말글살이를 더욱 넉넉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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