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칼럼] 한글 창제에 담긴 애민정신, 행정용어 순화로 계승해야
[의정칼럼] 한글 창제에 담긴 애민정신, 행정용어 순화로 계승해야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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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완/창원시의원

지난 9일은 오백일흔네 돌 한글날이었다. 한글 창제가 지닌 의의는 매우 크고 다양하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자주성을 지닌 문자이며, 전 세계에서 창제 원리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문자일 뿐만 아니라 그 원리가 매우 과학적이며 독창적인 문자라는 점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한글은 군주의 애민정신이 담긴 문자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다. 사대부의 힘은 문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성들이 쉽게 익히기 어려운 한자는 사대부만의 전유물이었고, 그것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부와 권력까지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도 쉽게 익힐 수 있는 문자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사대부들의 반발이 얼마나 컸겠는가. 사대부들의 집단적인 반발과 방해를 뚫고 한글을 만들고 반포한다는 것은 세종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몇 해 전, 안정 나씨 종중 묘역을 이장하던 중 한글 편지 2통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 ‘나신걸’이라는 군관이 아내에게 보낸 한글 편지였는데, 쓰인 연대가 1490년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한글이 반포되고 실용화되기까지 불과 반세기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글이 얼마나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처럼 ‘누구나 익히기 쉬운 문자’이기에 한글 창제에 담긴 애민정신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행정용어를 보면 ‘대다수 주민이 알기 쉬운 우리말’이 아닌 어려운 말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일본식 한자어나 어려운 한자어는 물론이거니와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용어도 많아서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관공서가 어려운 용어를 쓰게 되면 그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민을 공공 서비스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정보의 민주화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관공서가 오히려 정보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꼴이 될 수 있으므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

먼저 관공서에서 발행하는 각종 공문서와 홍보자료 등에 어려운 한자어와 외국어보다는 익숙한 한자어나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여 표기해야 한다. 관공서에서 발행하는 문서 등에서 발견되는 어려운 용어로는 ‘주서하여(붉은색으로 기재하여)’ 나 ‘도말(삭제)’처럼 어려운 한자어뿐만 아니라 ‘불입(납입)’,이나 ‘구배(경사)’와 같은 일본식 한자어도 많이 쓰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용어로 ‘언택트(비대면)’라는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언택트(untact)라는 단어는 영어사전에도 나오지 않으며, 컨택트리스(contactless)가 바른 표현이라고 하니 우리 관공서는 출처도 불분명한 외계어까지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관공서에서 시행하는 정책이나 사업, 행사의 제목과 공공기관의 명칭 등에 자주 등장하는 외국어는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가야 한다. 대체할 우리말이 없어 이미 널리 쓰이게 된 외래어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스마트팩토리’, ‘마스터플랜’, ‘북페스타’, ‘블랙프라이데이’ 등의 외국어를 행정에서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대다수 주민을 위한 행정이라 보기 어렵다.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사용함에 편안케 하고자’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계승하는 첫발은 행정용어의 순화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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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출 2020-10-13 11:59:01
좋은 지적이십니다. 최근 법원에 일이 있었는데 법원 등기 관련 행정 용어가 너무 어려워 고생했습니다. 사용자인 시민의 입장에서 써주신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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