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41)로체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41)로체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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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비박에서 살아 돌아오다
조형규 대장 56세 국내 최고령 등정 기록
경남연맹 로체 서벽 도전…6명 등정 쾌거
 
정상에 선 조형규 총대장(왼쪽)과 황동진 등반대장
영호남 산악인들은 2004년 거대한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세계 4위봉 로체 남벽과 로체샬 남벽(8400m), 로체 서벽 3개 루트를 통해 정상에 오른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로체 남벽은 당시 전 세계 산악인들이 오르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수많은 알피니스트들이 도전했지만 정상에 선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도전은 원정자금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로체 남벽과 로체샬 남벽은 한국도로공사가 주관하고, 로체 서벽은 경남연맹에서 분리해 주관하기로 했다.

로체 3개봉 원정대 무산…로체 서벽 도전

조형규 대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로체 남벽은 세계 모든 산악인이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오르기 힘든 루트다. 나 역시 1994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한국 최초로 성공하면서 로체 남벽이 최종 목표였다. 오랜 세월 로체 남벽에서 극한의 등반을 펼쳐보고 싶었지만 여러 문제로 이루지 못하고 로체 서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평화를 위한 2004 한국 로체서벽’는 3월 6일 창원에서 발대식을 가‘졌다. 원정을 떠나는 대원들은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대원들은 꿈속의 하얀 산을 이제 눈으로, 몸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섰다.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나 가족들, 특히 결혼한 여자들은 두려움에 이슬이 맺힌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3월 16일 인천공항~홍콩을 경유, 그날 저녁 8시 네팔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에 도착했다. 네팔 특유의 향기가 신비의 나라에 온 것을 실감했다. 3월 20일 등반에 필요한 행정 절차를 마친 원정대는 멀고도 먼 카라반에 나섰다. 카라반은 순수한 영혼과 만나는 길의 시작이다. 원정대는 높고 깊은 산 속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으로 유명한 루크라 공항에 도착했다. 그들은 바람에 휘날리는 타르초를 보면서 셰르파들의 땅에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짐을 정리한 대원들은 팍딩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6812m), 눕체(7879m), 푸모리(7145m), 탐세르쿠봉(6608m)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많은 것을 버리고, 욕망을 최대한 자제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을 보며 존경심을 느꼈다.

세계 16개팀 베이스캠프 모여 인산인해

7일간의 카라반 끝에 그들은 3월 27일 베이스캠프(5400m)에 입성했다. 2004년 에베레스트에는 한국원정대를 비롯해 이탈리아·스위스·칠레·그리스·말레이시아 등 모두 16개 팀이 모였다. 3일간 식량과 장비를 정리하고 라마제를 지내며 등반에 관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4월 6일 새벽 4시. 등반 장비를 챙기고 물량 수송을 위한 준비로 베이스캠프가 바쁘게 움직였다. 1캠프로 고소 적응과 물량 수송을 위해 향했다. 조용한 세상은 얼음을 찍는 아이젠과 대원들이 내쉬는 숨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가끔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얀 눈 속에서 입을 벌린 크레바스,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빙벽들, 아슬아슬하게 세워지거나 가로지른 사다리들, 끝없이 펼쳐진 눈밭을 그들은 헤쳐나갔다. 4월 8일 전 대원들은 다시 등반에 나섰다. 전날에 이어 1캠프로 물량을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원정대는 셰르파를 1명만고용했기 때문에 모든 짐을 직접 옮겨야 했다. 다음 날 문제가 발생했다. 이원회 원정대장이 시력이 좋지 않아 하산해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그는 눈의 초점을 제대로 잡히지 않아 괴로움을 호소했고 카트만두에서 진료를 받기로 했다. 이원희 대장은 1994년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을 시작으로 아콩가구아·앨브루즈·데날리 등을 등정했지만 세계 4위봉 로체 등반을 눈앞에 두고 하산해야 했다. 그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자주 뒤돌아봤다. 그럴수록 그는 하얀 산과 멀어져 갔다.

 
단프라 박스로 만든 썰매로 짐을 운반하고 있는 대원들

포터 없어 단프라 박스 썰매 활용 짐 수송

4월 10일 대원들은 위 캠프로 옮겨야 할 짐을 보고 막막해졌다. 셰르파는 1명 밖에 없었고, 수송해야 할 로프 등 각종 장비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고민 끝에 포터들이 짐을 옮길 때 사용한 단프라(DANPLA) 박스를 이용해 썰매를 만들기로 했다. 아이스폴 지대를 통과하면 1캠프에 데포한 물량을 썰매에 싣고 2캠프(6300m)로 이송하기로 했다. 모든 짐을 운반해야 하는 대원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김인기 대원은 회상했다. “원정자금이 부족해 셰르파 1명만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짐을 대원들이 운반할 수밖에 없어 대원들의 체력적인 고통이 컸다. 짐을 옮기는데 모든 체력을 쏟아부어 과연 정상에 올라가겠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날 아침은 간단하게 김칫국으로 해결하고 출발했다. 그들의 어깨에는 15㎏이 넘는 무게가 그들을 짓눌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과의 한판 싸움을 벌였다. 정명환 대원이 편도선염으로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푸르바 셰르파가 대신 정 대원의 짐을 지고 1캠프까지 올라갔다. 셰르파들은 휴식일에는 거의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푸르바 셰르파는 원정대 사정을 알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도움을 준 것이다. 대원들은 산소를 제외한 등반에 필요한 물량을 1캠프에 안전하게 갖다 놓고 귀환했다.

돼지 1마리를 게눈감추듯…체력 비축

4월 12일 대원들은 오랜만에 삼겹살로 포식했다. 로체 남벽에서 하산하던 김재수 대장이 남체 바자르에서 구입한 돼지 1마리를 보냈기 때문이다. 해발 5400m에서 맛보는 삼겹살을 대원들은 정신없이 먹었다. 네팔 전통 술 ‘창’과 함께 그들은 돼지 1마리를 게눈감추듯 먹어 치웠다. 대원들은 원정의 고통을 잊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4월 15일 새벽 4시 30분. 칠흙 같은 어둠을 뚫고 2캠프로 출발했다. 헤드랜턴 불빛이 한 방향으로 오르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와 1캠프에 있던 모든 물량을 2캠프로 옮기기 위한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등반을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원정대는 4월 24일 정상 공격을 예정하고 계획을 수립했다. 4월 21일 2캠프에 도착한 후 기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등반을 못하고 캠프에 대기하면서 힘들게 지고 올라온 식량이 빠르게 없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조형규 대장과 최강식 대원만 남고 다른 대원들과 셰르파는 하산했다. 강한 바람과 눈은 거의 매일 반복해서 내렸다. 대원들은 초조하기 시작했다. 악천후는 정상 공격 계획을 무산시키고 말았다. 조형규 대장은 베이스캠프로 하산한 후 기상정보를 수집했지만 당분간 좋은 날씨는 없을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뿐이었다. 그렇게 2004년 4월은 무심하게 지나갔다.

 
정상에 선 정명환(왼쪽)
D-day…5월 15일

5월 들어 잠시 화창한 날씨를 보였다. 5월 5일 원정대는 3캠프(7300m)로 진출해 강풍으로 텐트와 장비를 분실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단단하게 고정한 후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5월 들어 기상정보를 종합한 결과 5월 15일을 D-day로 정했다. 만약 이번에 정상에 서지 못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5월 12일 대원들은 2캠프에 모였다. 13일 3캠프, 14일 4캠프로 차례로 이동했다. 4캠프에 설치된 작은 텐트에는 대원 6명과 셰르파 1명 등 모두 7명이 모여 앉았다.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할 정도로 불편했다. 누룽지를 끓여 배를 채운 대원들은 결전을 준비했다. 5월 15일 새벽 1시 그들은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로프를 설치하면서 등반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예년에 비해 적설량이 적어 아이젠이 바위를 긁는 소리가 조용한 정적을 깨웠다. 대원들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해줄 뿐이었다. 낙석은 계곡을 타고 쉴새 없이 떨어졌다. 불안한 등반의 연속이었다. 대원들은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낙석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최강식 대원(왼쪽)과 구형준 대원이 추위와 강풍 속에서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다.(정상)
대원 6명·조형규 56세 국내 최고령 8000m 등정

강한 바람은 모든 것을 날려 버릴듯한 기세로 몰아붙였다. 원정대는 로체 여신의 도움으로 낙석과 강풍을 피해 등반을 계속했다. 그리고 12시간에 걸친 등반 끝에 5월 15일 낮 1시 그들은 정상에 섰다. 로체 정상에 6명의 대원과 셰르파 1명 등 모두 7명이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조형규 대장을 비롯해 황동진 등반대장·오세철·정명환·구형준·최강식 대원은 나란히 정상에 섰다. 조형규 대장은 56세의 나이에 세계 4위봉 로체봉 정상에 서는 국내 최고령 등정 기록을 세웠다. 그들은 강한 바람을 맞으며 촬영을 마쳤다. 바람은 모든 것을 삼킬 듯 강력했다. 대원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한 달 넘게 엄청난 물량을 직접 캠프로 옮기면서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정상은 왔지만 내려갈 일이 더 큰 걱정이었다.

최강식 대원은 회상했다. “8000m 산을 처음으로 등반했다. 정상에는 바람이 너무 세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정말 힘들게 올라왔는데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로체 정상에 선 오세철 대원
컨디션이 좋은 오세철 대원과 셰르파는 2캠프까지 하산하기로 했다. 지친 대원들이 4캠프에 한꺼번에 몰릴 경우를 대비해 힘든 몸을 이끌고 내려갔다. 나머지 대원들은 4캠프로 하산했다.

8000m 비박에서 살아 돌아오다

대원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힘겹게 4캠프로 하산했다. 그러나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마지막에 하산하던 조형규 대장이 4캠프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탈진한 대원들은 그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 밤이 찾아왔다. 로체는 빠르게 얼어붙고 있었다. 대원들은 긴 밤을 뜬눈으로 조형규 대장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최고령 8000m 등반 기록을 세웠지만 하산은 순탄하지 않았다. 허리에 차고 있던 피켈이 바위에 부닥치면서 아래로 사라졌다. 그는 잃어버린 피켈을 찾기 위해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어둠이 내리자 그는 배낭에서 헤드랜턴을 꺼내다 바위 아래로 떨어뜨렸다. 말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피켈과 랜턴을 잃어버린 그는 8000m에서 비박하기로 결심했다. 전날 등반과 등정으로 지친 그는 이제 8000m에서 비박으로 하룻밤을 버텨야 했다. 죽음이 그의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해가 지고, 추위가 엄습하면서 그는 엄습하는 잠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깨어 있으면 살고, 잠들면 죽는다.’ 8000m에서 텐트와 아무런 장비 없이 밤을 지새우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만약에 잠을 잔다면 바로 편안한 죽음과 연결된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몰려오는 잠을 쫓아내기 위해 ‘주의 기도’ 등을 외웠다. 그는 5월 16일 아침 햇살을 볼 수 있었다. 조형규 대장은 30여 시간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4캠프로 무산히 귀환했다. 2004년 로체 서벽에서 대원들은 하얀 산에서 희박한 공기와 싸우며 아무런 희생 없이 그렇게 원정은 끝이 났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3캠프를 출발한 대원들이 엘로우밴드 지대를 등반하고 있다.

[취지문]꿈과 이상과 평화를 위한 기도

아름다운 산을 생각하며, 꿈속의 하얀 산을 그리며 도전의 장도에 오르려 합니다.
등정을 위한 우리의 몸부림은 진정한 자유를 위한 추구이며
꿈과 이상과 평화를 실현코자하는 기도입니다.
산이 큰 만큼 더 큰 넉넉함을 배우고
보다 나은 행복을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누기 위한
삶의 방법을 구도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오르고자 하는 산은 어려운 인생 행로의 한 작은 봉우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오름짓이 인생의 큰 산을 오르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 오름짓을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4. 3. 6 원정총대장 조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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