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가장 행복한 일
1년 중 가장 행복한 일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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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코로나19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확 바꾸어 놓고 말았다. 뉴스를 봐도, 전화 통화를 해도, 사람을 만나도 화두는 온통 코로나19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 코로나 포비어(corona phobia)에 신음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언텍트(un-contact)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고 말았다. 언텍트는 우리가 만든 신조어지만 정확한 영어표현은 컨택트레스(contactless), 난 컨텍트(non-contact)라고 해야된다.

모든 것이 비대면(非對面)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절 한가위가 우리 곁을 찾아와도 평소와 달리 역동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오지 말라고 애원하고 자식들은 내려가면 오히려 불효자가 된다고 걱정한다. 만나보는 추석보다 방콕해서 같이 살자 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한다. 이렇게 가족까지도 만남을 피해야 하는 비대면 사회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말 할 수 없는 불안과 불행을 느끼게 된다. 추석 명절은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을 갖는 의식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말이다. 한가위는 가을의 한 가운데 있는 큰날 큰명절이다. 오곡백과가 익는 계절인만큼 일 년 중 먹을 것이 가장 풍성한 때이다. 이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온가족이 모여 즐겁게 지내게 되었다. 이처럼 이런 추석 명절을 통해서 흩어져 있던 온 가족이 만나서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남강 강변도로를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즐긴다. 그럴 때마다 진주 사람들은 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라고 되뇐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남강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진주시민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타 도시에서 누릴 수 없는 천연자연을 도시내 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금산교에서 진양호까지 강변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더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작년에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넓은 숲과 초원을 그렇게 부러워했는데 우리 진주에도 강변도로 주위에는 넓은 초원으로 펼쳐져 있어 캐나다가 부럽지 않다. 남강을 바라보며 초원에서 가족끼리, 연인끼리, 즐기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필자가 평소 그리워하는 가장 부러운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노부(老父), 노모(老母)를 휠체어에 태워 밀고가는 아들, 딸의 모습이다, 휠체어를 밀고 가는 그 아들, 딸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부모님은 계시지 않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아들, 딸이 더 부러운 것이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부모님 산소의 벌초를 하게 된다. 조상 없는 자손은 없다. 부모님이 계셨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벌초(伐草)는 자식으로서 부모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은 남들이 몰라도 벌초하지 않는 사람은 표시가 난다. 산소 주변을 보면 자손이 돌보지 않아 무덤이 폐허가 되다시피한 골총도 가끔 볼 수가 있다. 필자는 일 년 중 여러 가지 일들 중 산소에 벌초하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 생각한다. 오랜만에 찾는 짧은 시간이지만 부모님을 뵙고 인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영의 한시외전에 보면 “수욕정이 풍부지(樹欲靜而 風不止), 자욕양이 친부대(子欲養而 親不待)”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멎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왜 몰랐을까? 부모님은 우리 곁에 항상 계실 수 없다는 것을. 눈물이 난다.

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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