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없는 죄
법에 없는 죄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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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시인, 교사)
 

 

먼 바다를 자꾸 쳐다보고 있노라면 하늘과 바다의 위치가 뒤바뀌어 보이기도 한다. 가령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가 하늘 속을 헤엄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옳고 그르다 말하기 전에 지속적으로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바다를 계속 바라보다 보면 수평선 맞닿는 곳에서 하늘과 바다를 뒤집어 생각하기도 하는 순간처럼 여린 아이들은 부모를 바라본다. 가정에서 쭉 부모를 바라보다 보면 나와 부모가 뒤바뀌기도 한다. 부모가 내가 되기도 한다.

특히 부부의 불화는 부모의 결핍으로 와 닿아 더 간절하게 부모를 바라보게 된다. 끝없이 바다를 바라보듯 부모를 바라보다 부모와 자신이 뒤바뀌어 보이기도 하면 여린 아이는 길을 잃는다. 남편과 싸워 우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줄 때부터 아이는 스스로를 잃고 부모와 자리를 바꾸어 산다. 학교에서도 종일 엄마걱정이다. 스스로의 길을 열도록 배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남의 이야기 같다.

“선생님, 엄마가 또 가방 싸 들고 갔어요. 이제 안 돌아 올 거예요.” 이 말은 선생님 엄마가 돌아 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라고 하는 말이다. 묻지 않았는데도 틈만 나면 엄마 얘기, 아빠 얘기, 동생 얘기를 하는 아이가 있다. 온 세계가 가족으로 가득 차 있는데 정작 중요한 자기 얘기는 늘 쏙 빠지고 없다. “동생이 말 안 들어 엄마를 힘들게 해서 걱정이에요.” 이 말은 엄마가 동생 때문에 집 나갈까 걱정이에요 라는 말이다. 늘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에 떠는 아이는 결국 부모의 불화를 동생의 잘못으로 합리화 한다.

선생님이란 아이들에겐 의지할 사람 하나 더 두는 셈이다. 해결 해 주지 못하더라도 내 말을 내 편이 되어 들어줄 사람이다. 1년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어떤 아이는 평생 마음속에 등불로 켜 놓기도 한다. 어두운 순간, 어려운 결정 앞에서 비춰 줄 불빛이 되기도 한다.

부모의 불화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늘 가슴이 아프다. 부모에겐 이유가 있지만 아이들은 이유를 알기엔 너무 어리다. 아이가 스스로를 놓아 버리지 않도록 선생님이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허미선 시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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