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아 형, 고맙소
훈아 형, 고맙소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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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논설위원)
그의 나이 올해로 일흔넷이니 원로라 할 수 있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보다 세상을 오래 살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여서 굴곡진 세상을 살았고 그 경험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명곡을 지어 부르며 삶에 지치고 절망한 국민들에게 위로를 주었으니 원로답다 할 것이다. 부담스럽다며 국가가 주는 훈장도 마다하고 정해진 틀을 강요하는 북한공연도 거절했다. 아무리 출연료가 많은 초청에도 손사래를 치며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티켓을 사 보러 오라’고 한 강단도 있는 분이다. 그런 훈아 형이 지난 9월의 마지막 밤, 지치고 힘든 국민들을 위로한다며 십수년만에 방송에 나와 공연을 했다. 엄청난 반향이 있었고 국민들은 그의 정감있고 스케일 큰 공연으로 큰 위안을 받았다. 과거 어느 때보다 큰 추석선물이었다.

그가 이번 공연을 위해 아홉곡의 신곡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중 단연 화제를 모은 곡이 ‘테스 형’과 ‘명자’다. ‘어쩌다 한번 턱빠지게 웃으며 아픔을 그 웃음 속에 묻지만 죽어도 오고 마는 내일이 두렵다. 테스 형, 세상이 왜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가사 말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 국민들의 심경을 그대로 반영한 듯 했다.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필자는 그렇게 느꼈다. 조국과 추미애, 윤미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지도층 일탈은 우리사회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오랜 세월 우리의 의식에 자리잡았던 진실, 정의, 선, 홍익, 공정, 평등은 법망만 피하면 된다는 상황논리에 묻히고 그 자리에 특권과 위선, 도덕적 해이, 불평등과 온갖 찬스가 자리잡았다. 코로나19마저 겹쳐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잃고 생활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다. 이 때 소환된 사람이 테스 형이다. 그것도 ‘테스’ 형을 소환했기 망정이지 우리 정신세계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공자·맹자 형을 소환했더라면 역시 꼰대적인 발상이라며 묻혀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더욱 다행스런 일은 테스 형도 답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명자’는 또 어떤가. 우리의 어머니, 누이 이야기다. 피난시절, 부산 문현동과 영도섬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오두막집살이를 겪은 그들은 부둣가 생고기 가공과 영도섬 선박수리 깽깽이, 방직공장을 전전하며 자식들을 길러내며 이 땅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이다.

대중가요는 가장 민감하게 세태를 반영해 서민들의 정서를 자극한다. 나훈아는 그런 국민정서에 가장 잘 편승한 천재이다. 힘든 일상속에서도 낭만은 있었고, 사랑과 우정을 꽃피우는 게 우리의 일상사임을 그는 그냥 스치지 않았다. 훈아 형이 위대한 이유다.

추석 전날 그가 선사한 카타르시스와 감동은 특별했다. 두렵지만 오늘보다는 내일이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모두의 애환을 담아 낸 감동이 있어 값지고 설득력있는 기운을 내뿜었다. 정치가 못하는 일을 그는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치가 답할 시점이다. 더 이상 위선은 없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평등과 공정, 정의가 바로서야 국기가 탄탄해질 수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올바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보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사회정의를 바로세워 편법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뭉개고 덮어선 안 될 일이다.

법무부 장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아들 서모 씨의 군 휴가 당시 보좌관과 사이에 나눴던 문자메시지와 관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거짓 해명 논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라는 야당의 요구는 허공을 갈랐다. 이제, 정치권 주변의 불공정과 잘못을 미안해 하고 코로나19를 부덕의 소치라며 사과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훈아 형에게서 받은 위안을 대통령에게서도 받고 싶은 것이다. 훈아 형, 고맙소.

 
변옥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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