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친구의 빈자리
[기고]친구의 빈자리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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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진주사무소장)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가,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것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다 아는 유안진 시인이 난초같이 맑고 높은 향이 나는 친구를 그리워하며 쓴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의 일부분이다.

지난 일요일 사천 다솔사 절에 다녀왔다. 며칠 전 겨우 54세에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의 49제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제법 시간이 흘렀건만 친구의 빈자리는 갈수록 더 크게 느껴진다. 누구나 그러하지만 친구는 평소 끔찍이도 가족을 사랑하였다. 십여 년 전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고 장남으로서 3명이나 되는 동생들 결혼을 뒷바라지 하고 가족 대소사를 다 챙긴 한 가문의 가장이었다. 와중에도 연로하신 어머님을 위해 집을 개량하고 직접 돌봐 왔다. 평소 친구는 가장 큰 걱정이 지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님이라고 하였으며, 병마와 싸우며 차마 갈 수 없을 때도 매일 같이 전화 안부를 물었다.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꼭 성공하겠노라고 다짐하며 새벽 별빛이 깊어질 때까지 소주잔을 기울였던 때가 겨우 1년 전이었건만 친구는 숫한 추억을 뒤로 하고 말없이 떠났다.

친구가 근 한 달간을 혼수상태로 헤맬 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다. 친구들과 소식을 끊고 투병한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왜 친구는 많이 아프다고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투병으로 인한 병약한 모습을 차마 친구에게 보여 주기 싫었으리라…. 마지막으로 소식을 접했을 때 이미 가족들은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제야 안 된다고 외쳐 봤지만 그냥 허공 속에 메아리칠 뿐이다.

부디 친구여, 너는 떠났지만 아직 내 맘속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로 남아 있나니, 그 진한 추억을 끊임없이 소환해가며 살아가련다. 너의 향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으니, 좋은 곳에서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기를 우주에 계신 모든 신들께 빌고 또 빈다. 내일은 친구가 잠든 곳에 꽃 한 다발 들고 지난 이야기 나누며 그동안 못 다했던 소식을 전하고 싶다. 그러면 친구를 향한 그리움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친구의 영혼도 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너와의 추억을 소환해가며 살아간다. 그 곳 생활은 어떠한지 모든 게 궁금하다. 꿈속에서라도 전해다오.


 박성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진주사무소장
 
박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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