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비었다
병원이 비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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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숙 (문화기획자)
 

 

가까운 곳에 그림 수집가가 산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현시대 작품에 대한 안목이 높다. 작가에 대한 탐구심이 좋은 수집가이다. 전시장 나들이는 즐거운 일탈이라며 흥미로운 전시가 있으면 아무리 바빠도 꼬박꼬박 챙겨 본다고 한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시골 병원 의사. 병원 복도에는 항상 ‘복지천국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입을 모으는 분들이 모여있다. 장날이면 저렴한 외래진료비로 진료를 받기 위한 동네 어르신들이 장사진을 친다. 가끔 용무가 생기면 그의 점심시간을 강제로 뺏어야만 한다. 급하게 한 끼 때우는 와중에도 그림 이야기로 선한 눈빛이 반짝거릴 때,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도 함께 빛이 난다.

그렇게 바쁘던 병원이 요즘 텅텅 비었단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심한 간절기인데 병원에 감기 환자가 없다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어르신들이 마스크로 철저하게 입을 가리고 집 밖으로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곧 코로나19보다 더 지독한 독감이 유행한다지만 그는 매우 낙관적이다. 마스크를 쓰고 활동을 하지 않는 행동이 자동 방역인데 아무리 독한 감기 바이러스라 해도 어떻게 인체에 침투를 하겠느냐는 거다. 모처럼 함께 전시를 돌아보는데 얼굴에 느긋하고 편안한 여유가 묻어난다. 병원이 한가하다고 울 것까지 있겠는가 싶다가도 코로나가 준 고충을 생각하면 사실 우울할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에 무방비로 노출된 의료진과 현장에 투입되었던 방역인력이 호소하는 정신적인 고통, 유리막 너머로 먹는 즐거움을 빼앗긴 채 묵묵히 식사를 하는 사람들, 자가 격리하며 계절을 잃어버린 사람들,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바람에 늘 예민해져 있는 사람들,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경제 불황을 겪는 많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매일 예측불가의 일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다행히 이번 주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되었다. 병원을 찾기 전에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챙길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몸이 안 좋으면 큰 병원은 더 많이 아픈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가까운 보건소나 동네 병원엘 먼저 가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동네 병원에서도 유능한 의사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병원에 작은 그림이라도 발견한다면 심리적인 방역을 위해서 병원장의 예술 사랑이 듬뿍 묻은 수집품을 마음껏 감상하자. 몸과 마음을 균형 있게 챙기려면 생활 속에서 삶에 사유를 던져 주는 문화예술을 찾아 의도적으로라도 가까이하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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