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인 것과 인간이 아닌 것
인간인 것과 인간이 아닌 것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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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여성의 형상을 띈 마네킹이 허공을 응시한 채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공장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마네킹의 생식기 부분을 도구로 찢고, 자르고, 다듬기를 반복했다. 그곳에서는 마네킹과 리얼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담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사람과 비슷하면서도 아닌 듯, 인간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비정상적인 신체 비율과 수동적인 모습에서는 분명 간극이 존재했다.’

재작년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본 전시에 대한 짧은 감상이다.

‘리얼돌’은 사람의 실제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전신 인형이자 성인용품을 의미한다. 사람의 ‘실제(real)’ 모습과 흡사하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피부를 실리콘으로 처리해 실제 사람의 피부와 같은 감촉을 줄 뿐만 아니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관절, 구체적인 신체 부위도 특징이다.

리얼돌 찬반논쟁에서 논해야 할 것은 여성에 대한 인격권 침해, 성적 대상화, 그리고 기본적인 윤리 관념이다. 국가가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지나치게 간섭한다, 리얼돌이 오히려 성욕 해소에 도움이 되며 강간과 같은 성범죄를 막거나 감소시키는 데에 기여한다는 등의 담론은 과연 유의미한가. 노인, 장애인 등 성 소외자를 위해 리얼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얼굴’은 개인의 고유한 인격을 담으며, 따라서 단순히 신체 부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성욕을 해소하는 데 얼굴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격과의 관계 맺음을 선택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왜곡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인형이 실제 인물처럼 상품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내포한다. 한 리얼돌 국내 판매 사이트에 올라온 FAQ(자주 하는 질문) 게시판에 따르면, 리얼돌의 얼굴을 연예인이나 이상형 등의 ‘원하는 얼굴’로 주문 제작이 가능하며 추가 비용만 지불하면 점과 상처 등까지도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알지 못하는 사이 나와 닮은 리얼돌이 제작되고 유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잘라낸 주장들은 무슨 힘을 얻을 수 있을까. 리얼돌을 보며 거부감이 아닌 성욕을 느꼈다면, 이를 둘러싼 도덕적 결함에 분개해본 적 없다면 그동안 자신이 여성을 어떠한 존재로 여겨왔는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예진·경상대신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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