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균형의 가을이 드라마처럼 온다
불균형의 가을이 드라마처럼 온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10.1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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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구 (경남시조시인협회장)
 

 

무심하게 무의식적으로 길을 걷는데 문득, 벚나무에서 새빨간 잎 하나가 내 발등에 툭! 떨어졌다. 꼿꼿이 걷던 내가 허리를 굽혀 마치 지상에 절을 하듯 발등에 떨어진 단풍 든 잎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든다. 봄부터 써 내려온 나무의 장문 편지를 읽는다. 나무의 편지를 읽는다는 것은 조물주의 선물을 통째로 받는 것이다, 새빨간 색깔이 주는 뜨거운 감정이 굳게 잠긴 심장의 자물통을 연다. 환한 속울음을 허공에 토해놓는다.

속울음을 집어삼킨 가을바람이 단풍 레일 위로 열차처럼 달려간다. 지상에 떨어지는 잎잎들이 입영 소식 전하고 떠난 애인의 뒤를 따라가듯 손수건을 흔들며 바람 열차 뒤를 따라 뛰어간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그 여자의 눈물이 지난 봄날에 하르르 떨어진 벚꽃잎이던가? 푸르디푸른 여름날 까맣게 익어간 버찌 같은 그 고백이 아직도 선명한데, 천지사방 번져가는 눈물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붉은 단풍잎으로 달달하게 씁쓸하게 감정을 툭! 건드리고 있다. 하느님이 그려놓은 모든 시간 속의 사잇길을 햇살이 질투했나, 천둥 번개를 몰고 온 거센 비바람이 시기했나. 곤충 사절단이 구멍 숭숭 내놓은 단풍의 뒷면이 매우 쓸쓸하다. 한쪽은 매우 달달하고, 또 한쪽은 매우 씁쓸하다. 지금 나는, 어느 하늘 아래 어느 인생의 교차로에서 서성이나?

단풍 든 네 가을의 오른쪽은 무척 환하다//벌레 먹은 나의 왼쪽은 어둠이 매우 깊다//무작정 흔들고 가는//이 스산한 편두통 ‘졸작 불균형의 가을 전문’

어느 시인의 해설에서 따온다. “삶은 늘 불균형입니다. 사회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정의롭지 못한 사회이니 우리는 늘 불균형의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지요. ‘벌레 먹은’ 잎은 곱게 단풍 들지 않으니 인생의 가을이라고 환하게 모두가 환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겠지요. 더구나 환하게 단풍 든 것은 ‘네’ 오른쪽이고 벌레 먹어 어둠이 깊은 것은 ‘나’의 왼쪽인 것과 같은 자괴감이나 고통 슬픔 상실감만이 시인의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니…”

그렇다, 불균형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불균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균형을 잘 잡으며 살라는 신의 계시다. 그러므로 나는 늘, 가을만 되면 입영열차에 애인을 태워 보낸 여자처럼 운다. 시인의 이름으로 수십 수백 편의 감상적인 드라마를 쓴다. 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채색하려는 이 가을의 여운처럼… 여음처럼….

임성구/경남시조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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