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사유화
[경일포럼]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사유화
  • 경남일보
  • 승인 2020.10.2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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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 경남역사문화연구소 진주향당 상임고문
지방자치는 1961년 5·16 군사쿠테타로 중단된 이후, 30년만인 1991년 부활했다. 이어 헌정사상 처음으로 1995년 6월 27일, 4대 지방선거가 동시에 실시됐다. 당시 지방자치의 부활에 대해 정계·학계·언론계에서는 연신 찬사를 쏟아냈다. 호들갑에 가까울 정도였다. 더불어 지방자치의 부활이 곧바로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한껏 높아졌다.

성년을 훌쩍 지나 25년이나 묵은 지방자치의 현실은 어떠한가?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의 표현대로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인 동시에 그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 아마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사유화’로 전락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이른바 정치와 행정의 사유화가 바로 그것이다.

강준만 교수는 그의 책 『지방은 식민지이다』에서 지방자치제의 가장 큰 폐해로 ‘정치·행정의 사유화’를 꼽았다. 사유화(私有化)의 대표적인 사례는 권력 창출에 기여한 공신들에 대한 일종의 보상인 낙하산 인사였다. 낙하산 인사는 ‘정치적 협조에 대한 보은(報恩)과 더불어 정치적 가용자원의 비축’이다. 그래서 사유화의 원인에 연고주의와 정실주의라는 깊은 뿌리가 박혀 있다.

더불어 선거과정에서 동원된 지연·학연·동향·측근 인사들에게 특혜를 베풀어 신세를 갚는 방편으로 사용하거나, 재선 등 향후 정치행보의 기초를 다지는 당연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는 터부시된다. 더욱 큰 문제는 지방자치제가 세월의 흔적만큼 성숙되기 보다는, 정치·행정의 사유화 등과 같은 문제점이 더욱 고착되는 것은 물론 확산일로에 있다는 점에 있다.

지방자치제가 ‘정치와 행정의 사유화’로 옮겨가면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문제는 ‘지방의 제왕적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제왕적 민주주의’는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인사권, 조직관리권, 재정권’을 한 손에 쥐고 지자체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을 위시한 집행부를 견제하는 지방의회의 기능 역시 거의 정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의회는 일당 지배의 구조 때문에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지방의원 개개인의 의정활동은 대부분 당론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내부 감시장치도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종 비리가 터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책임정치의 구현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 아래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는 정도를 넘어서 뽑혀나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해결에 있어서 적극적인 참여와 견제보다는 여론의 비판과 같은 윤리적인 문제로 치환해서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도 여전하다. 이는 지방자치에 역행하는 정치·행정의 사유화를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른바 정치와 행정이라는 공공영역의 사유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해 아주 가끔은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작심하고 본격적인 이슈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해관계가 최우선으로 고려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달 사람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사유화의 근절을 막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공공영역이 사유화로 인해 탕진되는 것을 막는 것 이상의 큰 개혁은 없기 때문이다. 정치와 행정의 사유화가 진행되는 한 진정한 지방자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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