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나들이[37]
이창수와 함께하는 토박이말 나들이[37]
  • 경남일보
  • 승인 2020.10.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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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빛 감빛 옻빛
지난 글에서 ‘빛’이 들어간 토박이말 가운데 쪽빛, 갈맷빛, 거먕빛, 날빛을 알려드렸었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이어서 ‘빛’이 들어간 말 몇 가지를 더 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가만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도 제 둘레 사람한데 무슨 뜻 같으냐고 물으니 ‘가만히 있어라’ 할 때 그 ‘가만’과 관련된 말이 아니냐고 하던데 그 ‘가만’과는 멀고 ‘밝고 엷은 검은빛’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입니다. 우리말에 밝은홀소리(양성모음)일 때와 어두운홀소리(음성모음)일 때 그 뜻이 달라지는 말이 많은데 이 말도 ‘거먼빛’이라고 하면 ‘어둡고 엷은 검은빛’을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밝은홀소리 ‘ㅏ’와 어두운홀소리 ‘ㅓ’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이죠.

빛이 들어간 말 가운데 ‘감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 제대로 익어서 이런 빛깔을 내려면 좀 있어야 되는 감도 있겠지만 여기저기서 잘 익은 감을 보시면 떠올려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말집(사전)에도 ‘감빛’을 ‘잘 익은 감의 빛깔과 같은 붉은빛’이라고 풀이를 해 놓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황색 감’과 같이 익은 감을 보고 ‘주황색’이라는 말을 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주황색’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앞으로는 말을 배울 때부터 ‘감빛’이라는 말을 먼저 알려주면 저절로 ‘감빛’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함께 마음을 쓰자는 말씀을 거듭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칠흑 같은 어둠’ 또는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이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하는데 이 ‘칠흑’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칠흑’이라는 말은 한자어 ‘옻 칠’과 ‘검을 흑’자를 더한 말입니다. ‘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바로 ‘아~’ 하면서 알아차리는데 ‘옻’도 잘 모르고 ‘칠’이라는 한자를 모르면 더 알 수 없는 말입니다.

다만 ‘검을 흑’은 많이 쓰니까 어림은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칠흑’은 ‘옻칠을 한 것처럼 검은 빛깔’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칠흑’을 갈음해 쓸 수 있는 토박이말 ‘옻빛’이 있는데 이 말을 아는 사람도 드물고 쓰는 사람들은 더 드물지요. 앞으로 ‘칠흑 같은 밤’이라는 말을 쓰고 싶을 때 ‘옻빛 같은 밤’이라고 해 보시면 남다른 느낌을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옻’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가 ‘색칠’ 또는 ‘페인트칠’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칠하다’라는 말도 자주 쓰는데 여기에 들어 있는 ‘칠’도 한자 ‘옻 칠’입니다. 말집 사전에서 ‘칠하다’를 찾으면 ‘가구나 나무 그릇 따위에 윤을 내기 위하여 옻을 바르다’는 뜻도 있고 ‘면이 있는 사물에 기름이나 액체, 물감 따위를 바르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풀이를 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옻칠’은 따지자면 ‘옻옻’이라는 겹말이 됩니다. 이런 말의 짜임을 볼 때마다 드는 아쉬움은 ‘한자말’, ‘칠’은 ‘옻나무’라는 뜻도 되고 검다는 뜻도 되며 거기에 ‘-하다’를 붙여 두 가지 뜻을 담아 쓸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우리 토박이말 ‘옻’은 ‘옻나무에서 나는 진’이라는 뜻 밖에 없습니다.

한자말은 그 쓰임을 넓게 해 놓고 토박이말은 쓰임이 아주 좁게 되어 있는 것이죠. 한자말처럼 하자면 ‘옻하다’라는 말도 얼마든지 만들어 ‘칠하다’와 같은 뜻을 담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토박이말을 가두어 놓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여기서 제가 해 드리는 이런 이야기들이 널리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써 주신다면 머지않아 말집 사전에도 올라가게 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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