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43) 로체 남벽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43) 로체 남벽
  • 경남일보
  • 승인 2020.10.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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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순의 계절…끝내 발길 돌린 미완의 원정
한국도로공사, 2004 한국로체남벽 도전
 
2캠프 아래 지점을 오르던 박정용 대원이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허파바위 아래 1캠프 설치

4월 4일 아침 일찍 BC를 출발한 대원들은 오전 7시 40분 5800m 지점에 도착했다. 등반 속도는 빨라졌지만 1캠프는 멀기만 했다. 약 500m 로프를 설치한 대원들은 하산했다. 다음날 김창호·강연룡·주우평 대원이 루트 작업을 위해 김주형·윤치원·박정용·박상훈·이상영 대원은 짐을 수송하기 위해 나섰다.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벽을 올랐다. 숨은 턱까지 찼다. 손과 발에는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태양이 비추자 언제 그랬냐듯이 추위는 잊혀졌다. 뜨거운 햇빛은 눈사태를 일으켰다. 대원들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더미에 신경을 집중했다. 며칠간 대원들은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4월 9일 오후 1시 드디어 1캠프(5900m)를 설치할 지점에 도착했다. 고소 적응이 안된 대원들은 하산하고, 다른 대원들은 텐트 칠 공간을 마련했다. 2시간에 걸친 노력 끝에 일명 ‘허파바위’ 밑에 텐트 2동을 설치했다. 바위 바로 밑에 설치한 1캠프는 낙석과 눈사태로부터 안전한 최적의 위치였다. 대원들은 3개조로 편성했다. 1조는 윤치원·강연룡·주우평·박정용, 2조는 이정현·송형근·김미곤·이상영, 3조는 김주형·김창호·박상훈이었다.

4월 13일 1조가 가파른 절벽과 오버행으로 버티고 있는 허파바위를 넘어서기 위해 루트 작업을 시작했다. 이 구간은 로체 남벽을 오르는 1차 관문으로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허파바위는 하얀눈 능선이 끝없이 이어져 내려오다 바위에 막혀 끊어진 지점이다. 2000년 K2 정상에 함께 섰던 윤치원·강연룡·주우평 대원이 나섰다. 대한민국 최고의 거벽 등반가인 강연룡은 거침없이 미지로 오르는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들은 당초 이틀 정도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6시간 만에 돌파했다. 이 구간은 등반할 때와 하강할 때를 고려해 로프를 다르게 설치했다. 보통 1개의 고정로프를 설치해 사용하지만 난공불락인 로체 남벽을 감안해 2개를 설치했다. 오후가 되면서 돌풍과 함께 눈보라가 몰아쳤다. 대원들은 작업을 중단하고 1캠프로 돌아갔다.



급경사지, 위험천만한 캠프 설치

4월 14일 새벽 2시 등반이 계속됐다. 대원들은 몇 시간에 걸쳐 2캠프(6500m)까지 진출했다. 이어 김주형·김창호·이정현·박상훈 대원이 도착했다. 텐트를 설치할 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3캠프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2캠프가 들어설 곳은 장소가 너무 좁고, 경사가 70도에 달해 어려운 공사로 이어졌다. 그들은 얼음을 깎아내고 눈을 쌓아 바닥을 골랐다. 바위에 하켄을 박아 안전을 확보하는 이틀간의 노력 끝에 2명이 잘 수 있는 텐트 1동을 겨우 설치했다. 텐트 한쪽 귀퉁이가 공중에 떠 있는 위험천만한 텐트였지만….

BC에 있던 위계룡 부단장과 박상수 대장은 3캠프를 구축하기 위한 고민에 빠졌다. “일단 식량과 장비를 수송하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1캠프~2캠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낙석과 눈사태로부터 상당히 위험했기 때문이다. 또 2캠프는 2명밖에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많은 식량과 장비를 가능한 높은 곳까지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4월 20일 등반 17일째…2캠프

4월 20일 김창호·김미곤 대원이 2캠프에 누워 있었다. 시간은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코로 느껴지는 텐트 속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침낭을 계속 붙들고 있었다. 루트 작업을 위해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김창호는 뜬 눈으로 로체남벽의 어둡지만, 은밀한 움직임에 귀기울였다. 밤은 낮과 완전히 달랐다.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 같은 강한 바람도 잠이 들은 듯 조용했다. 크기에 따라 소리를 다르게 하며 쉴새없이 쏟아지는 돌들은 얼어붙어 떨어짐이 없었다. 한참 후 침낭에서 일어나 차를 끓여 마셨다. 등반을 나서기 전 입어야 하는 옷들과 각종 장비를 착용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높은 고도, 좁은 텐트에서 하는 행동들은 평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새벽 2시 그들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3동의 로프와 카메라를 넣은 배낭이 어깨를 짓눌렀다. 살아있음을 느낀 대원들은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야간 등반을 시작했다. 셰르파가 없어 모든 짐을 대원들이 직접 옮겨야 했다. 고정로프를 따라 오르는 구간은 눈사태 위험이 있어 신속해야 했다.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3캠프로 향하는 그들의 동작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곳곳에서 쏟아지는 눈으로 샤워를 하는 동안 로프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하루종일 200~300m를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2캠프를 건설한 지 10일 지났지만 3캠프를 구축하지 못했다.

 
3캠프_4캠프 구간을 오르고 있는 대원들
7000m를 넘어서

5월 1일 새벽 4시 김미곤·송형근 대원은 3캠프를 만들기 위한 오름짓을 했다. 그 시각 김주형·김창호 대원은 1캠프를 출발했다. 강한 바람은 기온을 급격하게 떨어뜨렸다. 손가락과 발가락에는 감각이 점차 없어지고 있었다. 작은 바위 능선에 도착한 김미곤·송형근 대원은 거대한 오버행 암벽과 마주했다. 눈이 없어 등반하기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일본 원정대가 남겨둔 로프를 따라 힘겹게 올라섰다. 7000m를 넘어서자 강한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했다. 7100m 지점에 도착하자 일본팀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스노우 바가 눈에 들어왔다. 김미곤 대원은 스노우 바를 눈 속에 깊숙이 박았다. 순간 그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다행히 그는 확보줄을 스노우 바 슬링에 걸어놓았다. 만약 확보를 하지 않았다면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3캠프 자리를 확인한 그는 더 이상 등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하산을 서둘렀다. 내려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2캠프에 도착하기 전 송형근 대원이 눈사태를 만났다. 눈은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송형근은 로프를 붙잡고 바위에 바짝 붙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눈사태가 스쳐 지나가자 웃으며 소리쳤다. “오메! 나 죽는 줄 알았네.”



드디어 3캠프…급변하는 날씨

5월 2일 윤치원·강연룡·주우평 등은 3시간에 걸쳐 눈사면을 깎아내 3캠프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BC에 들어온 지 1개월이 지났다. 로체 남벽은 오전에는 눈과 얼음을 끊임없이 내려보냈다. 오후나 저녁이 되면 눈이 내렸다. 대원들은 지쳐갔다. 1캠프를 오르던 이상영 대원이 발목을 다쳤고, 3캠프로 짐을 수송하던 강연룡은 어깨에 돌을 맞아 치료를 위해 추쿵마을로 내려갔다. 김미곤이 팔에 얼음을 맞는 등 부상자도 속출했다. 그러나 원정대는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4캠프(7350m)를 구축하기 위해 김주형·윤치원·김창호 대원이 선두에 섰다. 김미곤·송형근·박정용 대원이 뒤를 받쳤다. 대원들은 루트를 만들고, 지친 대원들은 아래 캠프로 후퇴하고 다른 조가 다시 길을 뚫었다. 5월 9일 드디어 4캠프를 설치했다.

기쁨도 잠시 로체 남쪽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왔다. 날씨가 바뀌고 있었다. 5캠프(7900m)로 향하던 대원들은 강한 바람에 막혀 되돌아섰다. 3캠프에 있던 대원들의 발도 묶였다.

5월 15일 BC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원정대는 등정 계획을 마련했다. 원정대는 로체 남벽을 등정하면 하산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로체 남벽을 오른 후 로체 서벽을 거쳐 에베레스트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고 있는 원정대의 2캠프 텐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를 셰르파를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3캠프에 있던 윤치원·주우평 대원이 5캠프를 설치하고 1캠프의 김주형·박상훈 대원이 정상 공격에 필요한 장비를 수송하기로 했다. 16일에는 김미곤·김창호 대원이 BC를 출발해 정상 부근에 300m 정도 로프를 설치하면 23일 김미곤·김창호·송형근·강연룡·주우평 5명의 대원이 정상을 향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이날 송형근·박정용 대원은 이틀간에 걸쳐 7600m까지 루트를 만들었다. 5월 16일 대원들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등반에 나섰다.

그러나 그날 밤 저녁 8시 BC에서 전 대원들을 불러모았다. 밤 11시가 넘어 대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BC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에베레스트에 갔던 셰르파가 갖고 온 편지는 대원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원정대는 5월 20일부터 몬순으로 접어들면서 기상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에베레스트 아이스폴에 설치한 사다리를 모두 철수한다는 것이다. 만약 사다리를 철수한다면 로체 남벽 정상에 오른 후 하산할 수 있는 길이 막힌다는 뜻이었다. 에베레스트 아이스폴을 건너지 못하면 대원들은 탈출로는 완전히 막히게 된다. 박상수 대장과 위계룡 부단장은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철수 결정을 내렸다. 지난 1년간 준비한 로체 남벽 원정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2004한국도로공사 로체 남벽·로체샬 남벽 원정대 취지문] 운명, 목표있는 삶을 위해서

목표있는 삶을 위해

운명처럼,

만년의 침묵으로 버티고 선 하얀 산에서 우린 그 무상의 행위속에서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추구하여 왔습니다.

등반은 단순히 오르기 위한 행동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히말라야 등반을 통하여 동료애와 살아가는 방법, 그리고 맑은 영혼을 갖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곳에는 무한한 힘과 꿈이 있었고 자유를 누리는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결국 이뤄내고 싶은 그런 꿈을 꾸며 대원정의 장도에 오르려고 합니다.

이 원정을 위해 땀흘린 원정대원들의 집념과 열정이 한국산악계의 숙원을 해결하고 거벽등반, 등로주의를 지향하는 선진적인 등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04. 3. 10. 박상수 원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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