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혐오에 빠지다
정치 혐오에 빠지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10.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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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대학교 교수)
나도 한 때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가지는 것이 민주 시민으로 당연하다. 정치적 무관심은 독재를 불러온다는 상식 정도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요즘 나는 정치 무관심을 넘어서 정치 혐오감을 가지는 것 같다. 티브이를 켜고 뉴스를 보지 않은 지가 오래 됐다. 민주 지식인으로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것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고 잘못된 정치를 보고 흥분하지 않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것도 알지만 지금처럼 정치 싸움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처음이다. 군사 독재 정권 시절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지켰던 시절 못지 않게 지금 정신적 혼돈을 겪고 있다. 집권한 정부에서 그들끼리 싸우는 비상식적 권력 싸움은 가관을 넘어서 이른바 이전투구다. 콩가루 집안이다.

충견을 들여왔더니 호랑이가 되었다고 야단이다. 이런 걸 한비자는 토사구팽(兎死狗烹) 이라 했던가.

교묘하게 프레임(틀)을 만들어 가면서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이념의 골은 갈수록 깊어 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경제는 도탄에 빠져 가게는 문을 닫고 국민은 고통과 시름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정치는 권력 싸움으로 난리이니 이 나라가 어떻게 될꼬.

/가을하늘 서슬푸러 나날이 더 높아가나/낙엽은 가을비 맞아 쓸쓸히 떨어지니/대작 없는 술잔에는 무상한 달빛만 가득하네

/하늘을 찌를 듯한 오뉴월 벼 이삭도/뜨거운 가을 햇살에 고개숙여 익어가니/농부는 낫을 갈아 거둘 날만 기다리네/밤새 내린 가을비 추적추적 더욱 서글프고/엊그제 아름답던 홍엽은 비에 젖어 뒹구니/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가을바람소리 애절하기 그지 없네./술잔 앞에 놓고 헛시 한구절 올려보니/부끄럽고 민망하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더 이상 말하기 싫다. 하여튼 늙어 가면서 오늘과 같은 정치 꼴은 처음 본다. 그래서 늙어가면서 정치판 싸움으로 몸과 맘이 상할까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에 혐오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마다 웃음은 사라지고 튀어나오는 말마다 원망과 욕지꺼러기다. 술잔을 기울여 울분은 토해내지만 가슴은 갈수록 답답하고 숨이 가쁘다.

오늘날 우리 국민은 정치를 떠나고 뉴스도 떠난다. 두 진영 언론에서 쏟아내는 사이비 패널들의 흥분된 소리가 소음이다. 그래서 요즘 많은 사람들은 어느 시절에도 보기 드문 흥겨운 트롯 광풍에 빠져드는 것이다. 다큐 프로가 좋고 자연 프로가 좋고 운동 프로가 좋아지게 된다. 3s(screen sports sex)로 우중정치를 만들어 독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실망한 정치로 3s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로 대화도 소통도 막힌 이 지경에 어디에 낙을 붙일 곳이 없다. 그래서 골짝 골짝 곳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여기저기 방황하고 우울해 지고 있다.

미국 정치학자 라스웰( Lasswell, Harold Dwight, 1902~1978)교수가 말한 탈정치적 무관심이다.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나 현실정치의 무능과 실망감으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탈정치적 무관심이 심해지면 정치가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그가 말한 무정치적 태도로 바뀌게 된다.

지금 우리 국민은 탈정치적 무관심에서 무정치적 무관심으로 나라가 위중하다. 정치적 무관심은 독재로 이어진다고 하니 지금의 우리가 무법천지의 신독재로 가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오늘따라 한비자의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고사가 생각난다. 술집에 사나운 개가 있어서 어린 아이 술 사러 오지 못하니 술이 팔리지 않고 시어간다는 뜻이다. 주인이 사나운 개를 물리치자 손님들은 다시 그 술집을 찾게 됐다는 고사다. 이 나라가 어디로 갈까. 세상이 왜 이래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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