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비화가야 고분서 금동관 출토
창녕 비화가야 고분서 금동관 출토
  • 정규균
  • 승인 2020.10.28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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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흔적 없는 교동Ⅱ군 63호분
피장자 꾸밈유물 온전히 발굴
내달 5일 발굴성과 온라인 설명
지금까지 한 번도 도굴되지 않았던 약 1500년 전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에서 장신구가 다량 출토됐다.

창녕군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 중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교동 Ⅱ군 63호분에서 비화가야 지배자의 꾸밈유물인 금동관을 비롯한 장신구 일체가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비화가야는 창녕을 거점으로 삼은 가야 세력이다.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63호분은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 있는 무덤 250여 기 가운데 유일하게 도굴 흔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확인된 장신구 유물은 높이 약 21.5㎝의 금동관과 관에 드리운 금동 드리개 및 금동 막대장식, 굵은고리귀걸이 1쌍, 유리구슬 목걸이, 은반지들과 은 허리띠 등 지배자 몸에 둘렀던 상태의 꾸밈유물 일체로,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지난 9월 발굴돼 큰 화제가 되었던 경주 황남동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장신구 일체와 비슷한 구성이다.

또한, 피장자 발치 바닥을 약 40㎝ 정도 낮춘 공간(길이 220㎝, 너비 130㎝)이 확인됐는데, 2명의 순장자가 안치된 공간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순장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아 일부와 다리뼈 일부 등도 같이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묘역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중에서 미정비지역(창녕군 창녕읍 교리 산5 일원)에 대한 학술 발굴조사를 시행해왔다.

2019년 11월에 39호분의 봉토에 가려져 도굴되지 않은 63호분(봉토 지름 21m)의 매장주체부(시신 안치하는 곳)를 열었으며, 이후 올해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해 매장 당시 피장자의 몸을 장식했던 금동관 등 꾸밈유물(着裝品, 착장품) 일체를 확인한 것이다.

장신구들은 피장자에 부착했던 상태대로 발견되어서, 머리 부분에서는 금동으로 만든 관(冠)이, 양쪽 귀부분에서는 금으로 만든 굵은고리귀걸이 1쌍이 확인됐고, 목과 가슴에는 남색 유리구슬을 3~4줄로 엮어서 만든 구슬 목걸이가, 허리에는 은으로 만든 허리띠가 있었다. 손 부분에서는 은반지들이 확인됐다. 피장자의 몸을 장식한 꾸밈유물 일체가 온전히 확인된 것은 비화가야의 최고 지배층 고분에서는 최초의 사례다.

금동관(높이 약 21.5㎝)은 가장 아래에 관테(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너비 약 3㎝)가 있으며, 그 위에 3단으로 이뤄진 3개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을 세운 형태이다. 관테 아래에는 곱은옥(곡옥)과 금동구슬로 이루어진 금동드리개(금동제수식)가 양쪽에 있고, 관테 양 측면에는 원통형의 금동막대 장식이 드리워져 있다. 세움장식 밑면에는 관모(모자)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허리부분을 장식한 은허리띠(전체 너비 45㎝)에는 2개의 은장식 손칼과 띠끝장식이 드리개로 덧붙여진 형태이다. 양손 부분에서는 각각 1개(오른손)와 3개(왼손)의 은반지가 확인됐고, 피장자의 오른 팔뚝 부분에서는 팔찌나 손칼 장식으로 추정되는 원형금판에 연결된 곱은옥과 주황색 구슬들도 확인됐다.

이들 유물이 출토된 63호분의 석곽은 길이 640㎝, 너비 130㎝, 깊이 190㎝의 규모로, 피장자의 머리 방향은 남향이다. 피장자 주변에서 목질흔과 꺽쇠들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상자형 목관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피장자의 머리 위쪽에는 토기들과 철제유물들이 매납된 부장공간(길이 190㎝, 너비 130㎝)이, 피장자의 발치 아래에는 바닥을 약 40㎝ 정도 낮춘 순장 공간(길이 220㎝, 너비 130㎝)이 확인됐다.

순장 공간에는 2명이 안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순장자의 치아 일부와 다리뼈 일부, 금동제의 가는고리 1점, 항아리 2점, 철부(쇠도끼) 2점, 철겸(쇠낫) 1점이 출토됐다. 순장 공간 곳곳에서도 꺽쇠가 다량 확인되고 있어 순장자도 목관에 안치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소 측은 “지금까지 비화가야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 이후 진행된 약탈과 도굴로 인해 당시 지배계층의 상징물이었던 금동관의 일부 편과 장신구만이 확인되었을 뿐 그 전모를 알 수 없었다”며 “이번 조사로 비화가야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의례를 이해하고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는 비화가야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내달 5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발굴 당시 녹화한 동영상을 공개하고, 온라인 발굴조사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정규균기자





 
63호분 석곽 내 유물 노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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