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그래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경일시론]그래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10.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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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정치의 출현은 사실‘말’의 출현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기원전 6~7세기, 인간은 무섭기만 한 신(神)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했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신에 복종하던 인간이 스스로 역사의 책임자로 등장하면서 인간들끼리‘말’로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대화의 시작이다. 신으로부터 독립한 인간이 자신을 완성해 가는 장치의 하나가 바로 정치다. 세속에서 투쟁하던 인간은 정치를 통해서 자기 삶의 높이를 꽃으로 피우려 했다.‘말’이 엉켜 대화에 실패하면 정치라는 꽃은 피울 수 없다. 대화의 실패는 결국 신뢰의 실패다.

공자 얘기다. 제자 자로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공자는 ‘말’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소위 정명론(正名論)이다. 정치가 잘 되려면 ‘말’이 사실에 맞아야지 어긋나면 안된다는 뜻이다. 말과 사실이 어긋나는 것을 거짓이라고 한다. 제자 자공이 또 통치의 요체는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경제와 군대와 신뢰라고 말했다. 제자가 이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남기면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최종적으로 신뢰를 남겼다.

거짓은 나라를 병들게 한다. 한 나라의 경제를 움직이는 화폐도 사실은 서로 믿고 거래하자고 약속한 신뢰장치다. 신뢰가 없으면 화폐가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 신뢰가 없으면 교육이나 행정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말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은 공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신뢰의‘신(信)’자가 사람(人)과 말(言)의 일치로 되어 있는 것에 깊은 함축이 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고, 믿음을 상실한 정부가 펴는 정책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

인간이 인간으로 지탱하는 가장 원초적인 힘 가운데 하나는 염치를 아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고도 염치가 살아 있으면 즉시 수정하고 다음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만, 염치가 살아 있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고도 상황을 들어 어쩔 수 없었다고 강변하거나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고 감추려 한다. 염치가 있다면 최소한 과거에 상대방을 비난하느라 했던 말이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사람들은 당장의 기능적인 작은 이익 때문에 본질을 포기하고 거짓을 범한다. 자기가 한 말은 지키겠다는 최소한의 염치만 있어도 본질을 포기하고 기능을 취하려는 유혹을 이길 수 있다. 지금도 도처에서 횡행하는‘내로남불’도 염치를 상실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거짓말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거나 염치없는 행위들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허용되면서 인간사회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사회적 가치가 무너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치권이 앞장서서 사회적 가치를 무너뜨리고 이러한 현상이 사회전체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가치는 옳고 그름을 따져 바른 길을 가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에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가 쉽지 않다.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회적인 기본 가치를 무너뜨리면 정치 자체가 파괴되어 국가적으로 더 큰 손실을 입는다. 정치를 자기 뜻대로 하려고 사회적 기본가치를 포기하면 ‘말’의 질서가 파괴되고 신뢰가 무너져서 국가도 국민도 바로 서 있기 어렵다. 정치도 사회도 정직한 사회적 기풍이 있어야만 발전한다. 거짓과 몰염치와 ‘내로남불’로는 국가나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혁신이고 개혁이고 통일이고 간에 거짓말과 염치없는 일만 좀 줄여도 문제의 절반은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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