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혁명의 산실, 시설원예연구소
백색혁명의 산실, 시설원예연구소
  • 경남일보
  • 승인 2020.11.03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충근 (시설원예연구소장·농업연구관)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경상도 민요 밀양아리랑에 나오는 구절이다. 당시에는 겨울에 꽃 보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작물은 대부분 제 철이 있었다. 무, 배추가 그랬고 수박, 참외, 딸기가 그랬다. 지천에 널린 꽃들도 다 제 철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철이 모호해졌다. 매장에 채소와 과일이 넘쳐난다. 가격의 차이만 있을 뿐, 없는 게 없다. 이렇게 온실을 이용한 시설원예는 사철 풍족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산업이 됐다. 흔히 ‘백색혁명’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산가요록(山家要錄, 1450)’에 세계 최초의 온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흙담과 온돌, 기름 먹인 창호지를 이용해 온실을 만들고, 그 안에서 겨울에 채소를 길러 먹는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이는 독일의 온실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선 것이다. 조선 후기까지 이 온실에서 농작물을 생산해 왕실에 진상했다 한다. 그 후 목재하우스 등을 거쳐 조금씩 늘다가 1970년대 포항제철과 울산화학공단의 준공으로 철제 파이프와 농업용 필름이 양산되면서 시설재배가 본격화됐다. 1980년대에는 하우스가 대형화됐고 1990년대에는 정부의 투자 확대로 현대화되기 시작했으며 그 여파로 시설재배면적도 약 2배 이상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 IMF 금융 위기 이후 정부지원이 축소되면서 재배면적은 5만ha 정도로 답보 상태이지만, 신품종 개발과 관련 기술의 발달로 생산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농업생산액 50조 원 중 시설채소만 5조를 넘을 정도로 비중이 크며, 사철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뿐만 아니라 농가 소득원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바나나, 망고 같은 아열대 과일도 온실에서 재배된다.

그리고 그러한 시설원예의 중심 역할을 해온 곳이 시설원예연구소이다. 1950년대에 설립된 중앙원예기술원(초대원장 우장춘 박사)이 모태였고, 부산 근교에서 약 50년간 수출작목을 중심으로 시설재배 연구를 수행해 오다가, 2014년 8월에 현재의 위치인 경남 함안군으로 이전했다. 약 25ha의 부지에 온실구조를 연구하는 구조 실험동을 포함해 80여개의 연구용 온실을 가지고 있으며, 재해에 잘 견디는 비닐온실 개발, 냉난방 에너지 절감과 수경재배 기술, ICT를 활용한 한국형 디지털팜 등에 대한 연구를 왕성하게 진행하고 있다. 한국 시설원예를 선도하며 농업과 농촌의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곳이 여기 시설원예연구소다. 함안에 오면 우리나라 시설농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희망찬 미래를 경험해볼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충근/시설원예연구소장·농업연구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