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류가 1류를 지배하는 나라
5류가 1류를 지배하는 나라
  • 경남일보
  • 승인 2020.11.0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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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효 (논설위원)
이건희 삼성 회장이 영면에 들어간 지도 일주일을 훌쩍 넘겼다. 그럼에도 이 회장이 생전에 던졌던 메시지는 여전히 화두다. 그가 생전에 했던 말이 세간에 다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1995년 4월에 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정부)은 3류, 기업은 2류다’와 1993년 6월 했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다. 당장 혁신하고, 바뀌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위기에 대한 고언이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 흐름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회장의 발언이었기에 충격이었다. 하지만 정치와 행정은 이 회장의 고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 않았다. 성찰하기 보다는 ‘괘씸하다’며 삼성에 대한 세무조사, 검찰 수사 등 각종 압력을 가했고, 삼성이 공식 사과까지 했다. 그때 참으로 옹졸하고 치졸했던 정치와 행정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못난 정치, 못난 정부를 둔 탓에 결국 대한민국은 1997년 IMF의 대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2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렸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와 행정, 기업이 25년 전보다 나아졌고, 바뀌어졌을까 하고 질문을 던져 본다. ‘정치는 4류, 행정 3류, 기업은 2류’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화두가 무색하다. 4반세기의 긴 시간에도 정치와 행정은 바뀌려고 하지도 않았고, 전혀 바뀌지도 않았다. 오히려 25년 전 보다 더 못난 정치와 정부가 돼 있다. 정치와 정부의 저급한 선동질 탓에 ‘대깨문’, ‘태극기부대’ 등 극단적 진영논리에 빠진 부류들만 판 치는 나라가 됐다. 국민들 마저도 당시 보다 더 못나게 된 것 같다, 당시 ‘4류’라 했던 정치는 그때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막말과 고성, 몸싸움이 여전하다. 그때 보다 더 심하다. 더 나쁘게 바뀌었다. 5류·6류 저급한 꾼들만 득실거린다. ‘내로남불’은 당연시 여기고, 국민적 비난도, 여론의 질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떠한 불법·편법·비리를 저질러도 내편이면 무조건 옹호한다. 정당은 더 한심하다. 비판자는 모두 쫓아냈다. 개념없는 똘마니들만 득실거리는 집단으로 바뀌었다. 당시 ‘3류’였던 정부는 지금이 더 하류다. 청년은 취업할 곳을 못찾아 방황한다. 직장에서 쫓겨난 근로자의 재취업길이 막막하다. 경제지표는 최악이다. 국민의 삶이 당시 보다 더 고단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때 보다 더 무력하다. 그래도 기업만은 이 회장이 던진 화두를 이행한 것 같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일류상품은 550개(663개 기업), 차세대 일류상품은 267개(284개 기업)다. 산업부가 일류상품 선정을 시작한 2001년만 해도 일류상품 55개(80개 기업), 차세대 일류상품 60개(60개 기업) 등 세계 일류상품 수가 120개(140개 기업)에 불과했다. 18년만에 일류상품 수는 6.8배, 기업 수는 6.5배나 늘었다. 기업만은 일류를 향해 다가가고 있다.

기업은 일류가 돼 가는데, 정치와 행정은 갈수록 하류화된다. 여당은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했다. 야당은 존재 자체가 없다. 분노와 갈등만 조장하는 혐오의 정치가 극에 달했다. 행정은 정치에 휘둘려져 오락가락한다. 국민과 기업을 옥죄는 행정규제만 남발한다. 행정은 정치의 시녀가 돼 있다. “정치가 4류인데 행정은 정치에 꼼짝 못하니 5류”라며 정치와 행정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다. 지금 정치와 행정은 5류이고 기업은 일류에 근접한다. 그런데 5류가 일류를 지배하는 이상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 바꿔라’다. 사람, 조직, 의식 등 모두 바꿔야 정치와 행정이 일류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와 행정은 5류, 6류로 전락하고, 일류인 기업도 2류, 3류로 추락하게 한다. 하류가 일류를 지배하는 나라는 결국 망한다.
 
정영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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