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이명박과 전태일
[경일포럼]이명박과 전태일
  • 경남일보
  • 승인 2020.11.0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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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육대학교 교수
두 사람을 생각하게 하는 깊어가는 가을이다. 이 두 사람이란, 이명박과 전태일을 말한다. 해방을 앞뒤로 하여 서너 해 전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난세에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들도 모진 고생을 했다. 이명박이 청년 노동자로 재수한 끝에 명문 K대학교에 입학함으로써 인생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열악하고 비인간적인 노동 현실에 항거하면서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지금으로부터 꼭 반세기 전인 1970년이었다. 청년 이명박은 현대에 입사한 5년째 승승장구 초고속으로 승진하고 있었다. 해가 저물 무렵에는 결혼해 안정을 찾기도 했다. 반면에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 현실의 희생물이 되었다. 서양에서는 희생제의의 제물이 양이라서 희생양이라고 하지만, 동양에선 굳이 말해 ‘희생 우(牛)’라고 할 수 있다. 소처럼 일만하다가 제사지낼 때 죽임을 당한다. 희생(犧牲)이란 한자어에, 소 우 변이 반복되는 게 여기에서 유래되었음을 말한다. 전태일의 죽음은 비유하건대 고대 중국의 제의에서 희생된 소의 죽음에 진배없다.

나는 이명박에 관해 두 차례 글을 쓴 일이 있다. 그가 집권한 초기에 발표한 산문인 ‘라쇼몽과 비비케이’(2008년 11월)에서는 비비케이 사건의 진실 공방이 영화 ‘라쇼몽’처럼 보인다면서, 대통령 퇴임 후에는 새로운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도곡동 땅의 주인이 누구냐로부터 시작된 MB게이트는 13년 만에 비로소 비비케이와 다스가 비리의 쌍생아임이 법적으로 확정된 것. 결국 내 예견이 적중되었다. 나는 그 당시에, 새로운 진실이 나온다면 2007년, 2008년 당시에 면죄부를 준 정계, 언론계, 검찰, 특검 인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이르되, 권력의 길은 가깝고, 인간의 길은 멀다. 좀 심한 말인지 몰라도, 그들은 이제 모두 역사의 죄인이 아닌가, 한다.

그 사건이 있은 지, 십 년이 지났다. 2018년 3월 14일, 기상 관측이 시작된 백십일 년 만에 한낮의 온도가 가장 높았다는 초봄의 하루였다. 이날 해나절 동안에 교정에 핀 매화꽃잎이 실시간마다 성장하고 있었다. 평생 처음 경험한 놀라운 일이었다. 나 역시 시간 단위마다 꽃잎을 확인하였다. 이날 이명박은 앞서 말한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이날에 쓴 나의 시 ‘무슨 기약이라도 있었기에’는 아무 문예지에 발표되었다가, 곧 간행될 개인 시집에 실릴 예정이다.

이제 며칠 후면, 전태일이 죽음을 선택한 날도 정확히 50년이 된다. 그의 죽음을 이상화해 역사의 의미를 지나치게 포장할 필요가 없지만, 이를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지나갈 문제는 더욱 아니라고 본다. 반세기가 지나면, 과거지사 무슨 일이든 객관적인 역사에 귀속되지 아니한가? 한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산업화의 그늘에서 일하는 소외된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성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포함한 이웃 덕에,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향유하는 국가가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명박이 자본주의의 허점을 이용해 그 이득을 철저하고도 최대한 사유할 수 있었다면, 전태일은 자본주의의 모순으로부터 공동체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또 이 손실을 사회화할 여지를 마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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