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세계여행]마셜제도의 눈물 젖은 코코넛
[도용복의 세계여행]마셜제도의 눈물 젖은 코코넛
  • 경남일보
  • 승인 2020.11.1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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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땅에서 고통으로 생을 마감한 한국인

때는 바야흐로 1939년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세계 2차 대전의 시작점으로 돌아간다. 그 후 2년이 지나 1941년 12월 8일 일본군이 미국의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에 들어갔다. 많은 젊은 남성들이 세계 2차 대전에 강제 징용됐다. 집안에 젊은 남자라면 가리지 않고 잡아가던 시대였다.
 

 


“어머니! “안 된다 이놈들! 우리 아들은 안 된다! 병수야!”,“뭣들하고 있어 데려가!”

일본 순사들이 동네마다 트럭으로 돌면서 17~40세 남성들을 마구잡이로 태웠다. 동네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일본 순사들은 이들을 차에 태웠다. 곤봉이 날아다녔다.

“어머니! 저 꼭 살아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열아! 어머니 잘 부탁한다. 형 꼭 돌아올게”

치욕, 분노, 걱정 등의 감정만 가득한 트럭은 너무나도 빨리 부산항에 도착했다. 전쟁을 위한 것들을 태운 군함은 무려 2달에 걸쳐 마샬 군도에 닿았다.

“내려라! 지낼 곳은 직접 짓도록 한다. 여기는 전쟁터다. 명령불복종은 즉각 참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라”

일본군에 함께 편성된 한국군들은 도착하자마자 왜 그래야하는지도 모른 채 본인들이 머물러야 할 곳을 직접 만들어야 했다. 찢어질 듯 배가 고플 때, 일본군은 식량이라며 나무를 끓인 것 같은 음식을 주었다. ‘카사바’라는 음식이었는데, 한국의 고구마와 비슷했다. 카사바를 한입 베어 물고 오물거리는 순간 병수는 실감했다. ‘내가 정말 멀리 왔구나.. 그리고 못 돌아갈 수도 있겠구나.

 

 


그 시각 미국 체스터 미니츠 제독과 참모들은 미드웨이 해전에 승리로 승기를 잡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어 군사회의가 한창이었다.

진지구축 중 초소 취사장에서 한국인 병사 한명이 일본 군인에게 물었다. “왜 점점 보급품이 줄어드는 건가요?”, “보급선이 곧 올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아라.” 정말 너무 배가 고프고 힘이 듭니다.”

그날 저녁 배가 고팠던 병사들 중 2명이 코코넛 나무에 올라 아직 익지도 않은 코코넛을 따서 내려왔다. 배고픔에 눈이 돌아간 한국군은 익고 안익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때 일본군이 나타났다. “조센징! 그거 이리 내놔라!” 저승사자의 목소리보다 더 무섭게 들렸다. 코코넛을 일본 간수 앞에 내려다 놓으려 고개를 숙이는데 머리 위로 곤봉이 떨어졌다. “아악!” 곤봉을 맞은 한국병사가 쓰러졌고 나머지 둘이 상태를 확인하려는데 발길질이 날아왔다. 곤봉에 맞아 기절한 병사를 업고 내무반으로 들어왔다. 병수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자신이 직접 그린 어머니의 사진이었다. “어. 어머니. 저 못 돌아갈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을 때 쯤 병수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병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내무반 앞 공터로 나왔다. 손에는 낫과 삽 총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오오삼삼 흩어졌다. “와아, 아아아” 한국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막부로 들어갔다. 총소리가 들렸다. ‘탕, 탕’ 두어 번 들리던 총성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됐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치로 놈이 보이지 않는다. 그를 찾아야한다” 그는 멀리 보이는 섬으로 헤엄쳐 도망갔다.

다음날 아침.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태양이 뜨겁게 내려쬐고 있었다. 구명보트에 10명씩 30개의 보트가 섬으로 다가왔다. 한국인들은 지도자를 선별해 그들과의 대화하기위해 뭍에서 기다렸다. ‘탕’ 그때 총소리가 들렸다.

 

 


한국군의 지도자가 쏜 총이었다. 일본군의 가슴과 등에 핏빛이 번졌다. 이내 무릎 꿇은 그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고개를 다 못 돌린 그의 얼굴 옆면으로 웃는 표정이 보였다. 넘어지는 그를 보며 한국군은 숨도 쉬지 않았다. 그 고요를 깬 것은 뭍에 도착해 내리기 시작한 일본군이었다. “다 죽여라!” 어느새 뭍에 닿아 배에서 내리기 시작한 일본군 중 중앙 보트에 있던 자가 소리치자 총을 마구 쏴댔다. 지옥도가 펼쳐졌다.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한 한국군과 쫓는 일본인. 걸려 넘어진 한국군인에게는 두 명 세 명의 일본군이 달려들어 총검을 쑤셨다. “총알도 아깝다.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몇 분이 흘렀을까. 정적이 흘렀다. 하루아침에 생판 모르는 국가에 끌려와 4년 동안 노예처럼 일한 300명에 이르는 한국인 병사들이 몰살당했다.



그 배고픈 시절 고향을 그리워하다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시신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한 그분들을 생각하니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이 있었는지를 가슴으로 새겼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지금의 우리가 있게 했음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오세아니아 마셜아일랜드 마셜군도 마주로의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

파푸아 뉴기니는 4000명, 마셜아일랜드 300명 등 그 중에 모든 병사들이 몰살 당한 마셜아일랜드. 바로 그곳에 희생당한 한국인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있었다.

전범이 영웅이 돼 있는가 하면 잊혀진 한국인이 있었다. 나는 사탕을 빼앗긴 아이처럼 울었다. 오세아니아 마셜아일랜드에 김밥을 파는 곳이 있었다. 다가가보니 한국인 3대가 함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택시렌탈을 해주면서 정비소사업을 하고 있었다.

놀라운 건 이 정비소 안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끌려온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가 있었다. 한국에서 지원금을 받은 초기 한인회장이 돈만 받고 주문 제작해 창고에 두었던 것을 집을 사면서 발견해 정비소안에 세운 것이었다.

“자 우리 묵념합시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얼마나 배가 고프고 두려웠을까?

아무 것도 모르는 마셜 섬나라 사람들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인 일본군의 묘비는 평화공원으로 조성된 것과 대비돼 마음이 아려왔다.


 

 



△마셜제도의 교도소(마셜군도 마주로)

오세아니아의 국가 중 인구 5만명의 나라 마셜 군도의 수도 마주로에 있는 교도소를 찾았다. 인구가 몇만명 몇천명 밖에 안되는 국가면 서로 거의 다 아는 사람일텐데 이런 곳에서도 범죄가 발생하는 지 궁금했다.

마셜제도인들은 착하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물론 아무나 들여보내주지 않을 걸 알기에 법원 경찰을 인터뷰하다가 경찰서장을 소개받고 만나게 됐다.

“니우에 섬(국가)에는 교도소에 죄수가 없더라”면서 마셜제도는 어떤지 물었다. 그는 나를 교도소로 안내했다. 13명 정도의 죄수가 있었다. 재미있는 건 주말에는 죄수들을 집에 보내준다고 했다. 심지어 살인해서 7년형을 받은 죄수는 6년 이곳에서 반성하고 봉사했다며 내년에는 교도소를 나간다고 자랑을 했다.

‘죄를 짓는 이유’를 물었더니 “술이 문제”라고 했다. 낮에는 마음씨 착한 천사들의 도시라면 술취한 밤에는 무법천지에 도둑들의 도시가 된다는 것이었다. 어느곳이든 적당한 음주가 필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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