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안부
마지막 안부
  • 경남일보
  • 승인 2020.11.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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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가)
 


엄마를 모시고 이모 집을 찾았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엄마 하는 말씀이 한 십 년 만에 와보는 것 같단다. 글쎄다, 몸이 불편한 뒤부터 방 안에서만 지냈던 터라 하루가 한 달 같고 일 년이 십 년 같기도 한가 보다.


이종 오빠가 아프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놓치고 말았다. 당이 많아 고생하며 병원 가는 것도 거부하여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나 보다. 입관식에서 세상을 하직하는 오빠의 얼굴은 평온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슬픔 속에서도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게 맑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오빠를 잊지 못해 동생인 이모를 찾아봐야 한다고 언제 적부터 졸랐다. 우리 집 계단이 높아 오르내리기가 힘들어 밖에는 거의 나가지 못했던 엄마였다. 더 기운이 빠지기 전에 이모를 보게 하는 것이 좋을듯해 아침에는 서둘렀다. 계단에서는 사위가 엄마를 업고 내려다 주어 휠체어를 태워 이모 집에 데려갔다.

그간 켜켜이 쌓인 슬픔으로 할 말이 많은 듯하지만, 정작 만나서는 서로 말을 잊지 못한다. 하물며 귀가 어두우니 엄마는 답답해한다. 내가 옆에서 이모의 말을 통역한다. 꿈에도 그리던 동생이지만 서로 손만 잡아보고 예전의 허물없는 사이는 어두운 귀가 허락하지 않는다. 두 노인이 꼬물꼬물 마루를 거쳐 방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쓸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자매간의 상봉은 고무풍선에 바람 새듯 싱겁게 끝이 났다. 옛날의 따뜻하고 정 많은 이모도, 이해심 많고 너그러웠던 엄마도 아니었다. 두 분은 앙상한 겨울 나목으로 조용히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뿐.

이층 계단은 엄마가 기어서 한 칸 한 칸 오르던 중 마침 남편 루카가 내려와 둘이서 팔다리를 각각 잡고 그네를 태우듯 열여섯 칸을 올라왔다. 엄마는 송아지를 둘러매고 가는 것 같다며 아이처럼 하하 웃었다. 나도 깔깔댄다. 엄마를 내려놓았더니 등줄기에 땀이 범벅이다. 녹초가 되어 큰 대자로 누웠다. 오늘,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가지 해서 마음이 가볍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팔 개월 전 요양원으로 들어가셨고 이모도 두 달 뒤에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그 후 엄마와 이모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날 두 자매의 만남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안부였다. 엄마가 떠나가신 지 사 년이 흘렀다. 이모는 여전히 요양원에 계시며 형제의 죽음도 모른 채 병실 침상에서 세상을 잊고 고요히 누워 계신다. 천상을 꿈꾸듯.

허정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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