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영화산업의 시조 - 뤼미에르 형제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영화산업의 시조 - 뤼미에르 형제
  • 경남일보
  • 승인 2020.11.15 1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화·건축·조각·연극·무용·문학 등과 같은 자매예술에 이어 탄생하였기에 ‘제7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화의 역사는 불과 한 세기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영화는 다른 예술들이 몇 천 년, 심지어 몇 만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것과 비교해 보면 영화의 역사는 일천하기 짝이 없다. 사실을 동적으로 기록하는 원시적인 활동사진시대를 거쳐, 실험영화를 만들고, 다시 그것은 흑백 무성 영화시대에서 유성 영화시대로, 색채 영화시대로, 그리고 대형 영화시대로 빠르게 발전해 왔다. 그럼에도 영화는 전 세계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대중에게 정신의 양식을 공급해 주는 예술수단으로서 급성장해 왔는데, 그 이유는 시청각 복합체의 표현력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영화는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오락의 방편으로서, 그리고 현실인식과 사회계몽 및 교화와 동원을 위한 대중적 소통 매체로 인정받고 있다.

최초의 영화 상영과 특허획득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약간의 다른 견해도 있지만, 프랑스 리용의 뤼미에르 형제(Les freres Lumiere)가 1895년에 그들의 시네마토그래프를 공개 상영한 것을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 시각이다. 이들 두 형제가 프랑스 빠리 그랑 꺄페(Grand Cafe)의 지하 인디안 살롱에서 10여 편의 활동사진을 최초로 상영했던 날이 1895년 12월 28일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이에 앞서 1894년 2월 13일에 촬영기와 영사기를 겸하는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e)에 대한 특허를 얻음으로써 ‘영화 산업’을 잉태시킨 산파역을 했던 것이다.

최초의 영화상영회를 가진 지 불과 몇 달 뒤인 1896년에 뤼미에르 형제는 런던과 뉴욕을 방문하여 시네마토그라프 상영회를 가진데 이어 이들의 발명품은 폭발적인 관심을 일으키며,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에서 시연회를 가지는 등의 놀라운 성과를 일궈냈다. 또 같은 해 7월 7일에는 인도 봄베이 왓슨 호텔에서 시사회를 가졌으며, 노벨티 극장에서 7월 18일까지 영화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1900년에 열린 파리 세계박람회의 주인공은 단연 시네마토그라프였다. 박람회 대형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되는 행사가 열렸으며, 뤼미에르 형제와 시네마토그라프는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형인 오귀스뜨 마리 루이 니꼴라(Auguste Marie Louis Nicholas)와 동생 루이 쟝 (Louis Jean)은 프랑스 북 동부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앙뚜완은 그림을 그리다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리용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들과 다양한 교류를 했으며 빠리와 비엔나에서 열린 사진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형제는 모두 아버지 앙투완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감수성과 과학적 호기심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둘 다 유기 화학에 대해 흥미를 느꼈는데, 그 중에서 오귀스뜨는 생화학과 의학 분야를 좋아했고 동생인 루이는 물리학에 관심을 가졌다. 루이는 리용의 라 마르띠니에르(Lycee La Martiniere) 응용미술 및 과학기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사진건판(photographic plate)의 더 나은 형태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래서 뤼미에르 형제와 아버지 앙투완은 이 기술을 이용한 공장(Usines Lumiere)을 리용에 설립하여 사진건판 관련 유럽최대회사로 키웠다. 1894년 2월 13일, 뤼미에르 형제는 시네마토그라프 특허를 획득한 뒤 그 해 여름, 루이는 이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퇴근하는 장면을 시네마토그라프로 촬영했던 것이다.

1893년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이 키네마토스코프를 만들어 움직이는 사람의 영상을 보여줬다. 뤼미에르 형제의 목표는 에디슨의 아이디어를 개선해 움직이는 영상 필름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뤼미에르 형제는 움직이는 사진을 촬영하고 영사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시네마토그라프를 제작해냈다. 에디슨이 만든 키네마토스코프에 비해 훨씬 소형이어서 촬영 상영이 용이했다. 또한 키네마토스코프는 놀이공원의 오락용 기계 개념이었기도 하고 한 번에 한 사람만 영상을 볼 수 있었던 데 반해, 시네마토그라프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사 촬영 상영용이란 점이 달랐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