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위로
나무의 위로
  • 경남일보
  • 승인 2020.11.1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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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선 (시인, 교사)
가을이 아름다운 건 나무의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작별의 인사를 준비하듯 나무는 마지막 힘을 모아 잎을 꽃으로 바꾸어 놓는다. 큰 나무 가득 달려있는 잎은 빨강, 노랑, 주황의 찬란한 꽃이 된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고개를 들어 시선이 닿는 곳 마다 아름다움이 가슴까지 파고든다. 코로나19로 어려웠던 1년을 위로하듯 올해 단풍은 더 곱고 예쁘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고 서울도 멀다하지 않고 배워 와서 전수하던 수석교사가 있었다. 지금은 불현듯 찾아온 암으로 투병 중이다. 그녀에게 산과 나무는 천군만마(千軍萬馬)와 같은 신의 선물이다. 산에 올라 나무와 함께 호흡하며 나무가 주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어떤 날은 지루하지 않도록 바람이 불어서 꽃잎이 떨어지듯 우수수 나뭇잎을 날려 준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으면 소원 하나 이루어진다던 그 말을 믿으며 나뭇잎을 잡고 12번 항암 치료를 견뎌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잡는다고 한다.

6학년 선생님이 연구실로 찾아 왔다. 매년 학생 중에 몇은 1년 내내 선생님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코로나19로 등교가 늦어져 1년 동안 키웠어야 할 학생의 정서와 행동에 관한 지도가 지금 한창이다. 순하게 서로 잘 어울려 생활하는 학생들의 담임이 되는 해도 있지만 몇 명의 학생이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일로 속앓이를 하는 해도 있다. 모두 그 해의 인연이다. 몸도 마음도 지친 선생님에겐 동료의 위로가 나무의 위로와 같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 시간에 고운 말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학생들에게 ‘고운 말을 들어서 기분 좋았던 경험’에 대해 물어 보면, 대부분 “엄마한테 들었어요”한다. 엄마가 무한의 애정으로 불러 주던 애칭부터 시작하여 갖가지 응원의 말들에 기분 좋았던 경험으로 엄마의 말이 고운 말이 되고 나무의 위로가 되는 것이다.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지 않아 6학년 선생님을 힘들게 하던 그 학생에게도 나무가 되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이 아이들이 나무처럼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나무를 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허미선 시인,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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