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46) 촐라체의 기적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46) 촐라체의 기적
  • 경남일보
  • 승인 2020.11.1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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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헌·최강식, 촐라체 동계 세계 초등
촐라체 북벽 등반 전 베이스캠프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박정헌(왼쪽)과 최강식. 그들은 조난당하면서 카메라가 든 배낭을 버리면서 이 사진이 유일한 사진으로 남아 있다.
“추락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손을 내저었지만 허사였다.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몇 초의 시간이 마치 천년만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몸이 몇 번 뒤집히면서 의식도 마구 뒤엉켰다. 짧은 순간, 온갖 생각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최강식



2005년 1월 16일 오전 11시 촐라체(6440m) 정상.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박정헌과 새로운 유망주로 떠오른 최강식은 에베레스트에서 17㎞ 떨어진 촐라체 정상에 서 있었다. 그들은 겨울 시즌 촐라체 북벽을 세계 초등하며 등정의 기쁨을 만끽했다.



촐라체 북벽…쿰부 히말라야 3대 난벽

촐라체 북벽은 1995년 프랑스 원정대가 여름 시즌 많은 인원과 물량을 동원해 한 달 만에 초등했다. 10년이 지난 후 박정헌·최강식은 겨울철 촐라체 북벽을 3박 4일 만에 오르며 동계 세계 초등을 이뤄냈다.

이들은 왜 촐라체 정상에 올랐을까? 촐라체는 비록 6000m대에 불과하지만 촐라체 북벽의 경우 베이스캠프(4900m)에서 정상까지 1500m에 달하는 거대한 수직으로 형성된 매력적인 벽으로 진정한 클라이머들이 한 번쯤 도전하고 싶어 하는 산이다.

특히 촐라체 북벽은 타와체(6542m), 캉텐가(6685m)와 더불어 쿰부 히말라야를 대표하는 어려운 벽으로 클라이머들을 유혹하고 있다.

2004년 가셔브롬 2봉 남릉을 한국 초등한 박정헌과 최강식은 알파인 스타일로 촐라체 북벽을 겨울시즌에 오른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당시 나도 이 등반에 참가할 계획이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으며 박정헌·최강식은 2004년 12월 24일 김해공항을 출발, 네팔 카트만두로 향했다.

크리스마스에 카트만두에 도착한 이들은 하켄과 로프 등 장비를 구입하고 이튿날 루크라~팍딩~남체 바자르~페리~종라를 거쳐 한국을 떠난 지 8일만인 2005년 1월 1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촐라체 북벽 전경
이틀분 식량·장비 갖춰…첫 등반

그동안 베이스캠프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로부체 동봉을 오르며 컨디션 조절을 마친 이들은 1월 13일 오전 3시 촐라체 북벽을 향해 출발했다.

앞으로 다가올 엄청난 시련과 좌절을 까마득히 모른 채 그들은 헤드랜턴과 피켈, 자일 등 장비와 이틀분의 식량만 준비했다. 베이스캠프를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난 후 이들은 설사면이 시작되는 5100m 지점에 도착, 아이젠을 신고 40~50도의 암벽과 조우했다.

박정헌이 선등하며 본격적인 루트 개척에 들어갔고 약 150m를 전진한 후 거대한 얼음기둥을 만났으며 고드름 사이로 난 좁은 바위틈을 이용, 가까스로 이 구간을 통과했다. 다시 150m를 올랐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90도 이상의 수직 벽이 버티고 있었다. 피해 갈 곳이 없어 정면 돌파키로 하고 하켄 2개를 사용, 힘들게 오버행을 넘어섰다.

촐라체 북벽은 처음부터 어려운 루트로 계속 연결돼 있었으며 그들은 오후 5시께 세 개의 오버행과 고난도의 암벽 구간을 서너 차례 극복하며 Y자형 쿨르와르에 도착했다. 그들은 첫 번째 밤을 보내기 위해 비박색(비박하기 위해 고안한 방수 투습성 침낭 커버)에 들어가 피곤한 몸을 맡겼다.

따뜻한 물이 아침밥…고통의 연속

1월 14일 오전 6시 눈을 뜬 박정헌·최강식은 차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8시부터 다시 피켈을 휘두르며 햇볕이 들지 않은 북벽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제 등반으로 많이 지쳐 있었으며 여전히 오버행 구간이나 거대한 얼음기둥들이 계속 그들의 앞길을 막았고 전진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후 4시 해발 5800m 지점은 경사가 70도에 달하고 바위와 눈이 뒤섞인 암벽에서 등반을 멈췄다. 두 번째 비박을 위해 가로 1m, 세로 25㎝의 공간을 만들었다. 비박 장소가 얼음 벼랑에 만드는 바람에 코펠을 놓을 공간이 없었다. 결국 다리 위에 올려놓고 물을 끓여 물로 저녁을 대신했다. 기나긴 밤을 지새고 아침 7시 등반을 시작했다. 30여m를 오르고 경사가 완만한 곳을 찾아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암벽을 트레버스하자 정상으로 이어지는 쿨르와르에 도착했다. 그곳을 통과하자 이번에는 바위에 얼음이 얇게 달라붙어 있는 오버행이 나타났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오후 4시 그들은 조심스럽게 올랐다.

정상이 멀지 않았지만 해가 저물고 있는 상황을 고려, 세 번째 비박에 들어갔다. 당초 이틀이면 오를 것 같았던 촐라체 북벽에서 사흘째 밤을 맞았다. 다행히 장소는 바람을 막아줄 처마가 있었다. 공간도 제법 넓고 평평해 안성맞춤이었다.



등정 후 찾아온 지옥으로의 추락

1월 16일 아침 최강식이 먼저 선등하고 눈사면을 5피치 정도 전진하자 정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결국 박정헌·최강식은 1월 16일 오전 11시 촐라체 북벽 정상에 섰다.

정상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은 이들은 서둘러 남서면 루트로 방향을 잡아 하산했다. 로프로 서로를 묶은 그들은 빠르게 내려왔다. 오후 4시 해발 5300m 설원지대에 도착한 그들은 경사가 끝나는 지점에 크레바스 지역을 통과했다.

먼저 통과한 박정헌이 말했다.

“강식아 크레바스 큰 거 있다 조심해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떨어져요”.

그 순간 서로를 묶고 있던 자일이 팽팽해졌다. 박정헌은 본능적으로 추락을 막기 위해 피켈을 얼음에 내리꽂았다. 하지만 엄청난 충격에 제동에 실패했다. 박정헌의 몸이 미끄러져 추락했다. 그의 몸은 자일에 뒤엉켜 기적적으로 멈췄다. 그러나 추락 충격으로 박정헌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피켈과 고글을 잃어버렸다. 최강식은 크레바스에 빠지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다 거북이 등처럼 튀어나온 부분을 밟는 순간 미끄러지면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그의 몸은 크레바스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는 왼쪽 발목이 완전히 골절되고 오른쪽도 부러졌다. 다행히 오른쪽 다리는 약간의 힘을 실을 수 있었다.

오후 5시 짧은 순간 약 20m 깊이의 크레바스에 빠지면서 일어난 사고였다. 박정헌은 부러진 갈비뼈의 고통을 참아가며 최강식을 끌어올렸다. 최강식은 부러진 다리 가운데 통증이 덜한 오른쪽 다리와 양팔로 크레바스를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이렇게 18m를 올라왔지만 마지막 오버행 구간이 남아 있었다. 최강식은 피켈에 쥔 손에 힘을 주고 아이젠을 얼음에 찍을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최강식의 몸은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두 다리가 부러진 최강식, 고글을 분실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갈비뼈가 부러진 박정헌은 히말라야에서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강식은 사고 이후 경상대총학생회 회장에 당선된 뒤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07년 겨울 지리산 세석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일을 자를까” vs “함께 살까”

박정헌의 머릿속에 아주 짧은 생각이 스쳤다.

“자일을 잘라야 하나. 그렇게 되면 강식이와 나의 고통도 끝날 것이다.”

하지만 박정헌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결심했다.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아야 한다.”

최강식은 문득 자신의 배낭에 있던 주마(Jumar)가 생각났다. 주마를 이용해 오버행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주마와 슬링을 이용해 추락했을 때 혼자서 자일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고안된 프루지크(prusik) 매듭을 만들어 오버행을 가까스로 통과했다. 이제 10m 정도만 올라가면 크레바스를 탈출할 수 있었다. 박정헌은 최강식이 올려보낸 7㎜ 로프와 피켈로 보다 안전하게 확보했다. 지옥으로 추락한 최강식과 위에 남아 있던 박정헌은 이렇게 3시간의 사투 끝에 무사히 크레바스를 탈출할 수 있었다.

크레바스 안에 있던 최강식의 배낭을 어렵게 끌어 올린 박정헌과 최강식은 이제 어둠과 추위가 엄습할 비박을 이겨내야 했다. 탈진한 두 사람은 비박 장소를 물색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아 그저 평평한 곳에 매트리스를 깔고 비박색으로 들어가 길고 긴 밤을 지새웠다.

 
촐라체 북벽 등반 루트-출처 월간 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

대한민국 최고 거벽 등반가로 히말라야의 고산을 누비던 클라이머 박정헌. 2004년 24살의 나이에 로체와 가셔브롬2봉 8000m 2개봉을 등정하며 한국 산악계의 기린아로 급성장한 최강식은 이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다.

1월 17일 기온은 조금 올랐지만 눈이 내렸다. 두 다리가 부러진 산악인과 고글을 분실하면서 사물을 거의 구별하지 못하고 갈비뼈가 부러진 산악인은 이제 ‘서로의 다리가 되고 눈이 되어’ 멀고도 먼 길을 내려가야 했다.

박정헌은 배낭을 메고 강식을 부축하며 살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최강식은 부러진 두 다리에 체중이 실리면서 고통이 찾아왔고 박정헌 역시 부러진 갈비뼈에서 통증이 엄습했다.

결국 그들은 앉아서 눈썰매를 타듯 하산했다. 만약을 위해 서로의 몸을 다시 로프로 연결했다. 오전 10시 경사가 심한 지역을 통과하다 박정헌은 또다시 추락, 50m를 미끄러지다 크레바스 앞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피켈이 뽑히면서 그의 얼굴을 강타, 얼굴은 피범벅이었다.

그들은 자일과 피켈 등 가장 필수적인 장비만 챙기고 배낭을 버렸다. 배낭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칫 목숨과 직결될 수 있었지만 그들의 몸 상황을 고려했을 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오후 5시 급기야 박정헌은 앞이 보이지 않는 설맹 증세까지 나타났다.

골든 타임 놓친…다섯 번째 비박

두 시간 가까이 바위벽과 사투를 벌이며 내려섰지만 그들 앞에 오버행의 빙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정헌은 자일을 잘라 슬링을 만들며 조심스럽게 하산했다. 추락을 반복했지만 최강식을 데리고 무사히 내려왔다. 천신만고 끝에 빙벽을 내려온 그들은 2개의 호수를 통과하자 어둠이 깔렸으며 얼음 경사면이 다시 그들 앞을 가로막자 비박을 계획했다.

다섯 번째 맞는 비박이었다. 나흘간 먹은 것은 차 몇 모금과 파워 젤 몇 개가 전부였다. 지난 이틀간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큰 부상을 입고 매트리스와 비박색도 없이 하룻밤을 보낸 그들은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지 6일째를 맞이했다. 1월 18일이었다.

최강식의 두 다리는 퉁퉁 부어올라 거의 움직이지 못할 상황이었다. 두 손 역시 동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날씨도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형! 먼저 내려가세요”

이제 최강식의 하산은 불가능했다. 박정헌은 최강식을 업었다. 체력이 바닥난 박정헌은 겨우 다섯 발을 옮긴 후 최강식과 함께 나뒹굴었다.

 
박정헌은 사고 이후 패러글라이딩으로 히말라야 2400km를 종주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때 최강식은 박정헌에게 먼저 내려갈 것을 권유했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박정헌은 말했다. “마을에 가서 현지인들에게 구조를 요청하고 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 그는 3시간 정도 하산해 야크 움막을 발견했다. 빗장은 굳게 잠겨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피켈로 문을 부수고 들어간 박정헌은 그대로 쓰러져졌다. 최강식을 구조해야 한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한편 혼자 남아 있던 최강식은 오전 10시쯤 눈이 내리자 두 팔로 땅을 짚으며 하산을 시작했으며 경사면을 만나면 그대로 굴렀다. 장갑이 헤어져 손에 피멍이 들었지만 계속 내려갔다. 기적적으로 그는 움막을 발견했다.

기어서 내려온 최강식…기적적으로 움박 도착

오후 3시 최강식은 무려 다섯 시간을 기어서 박정헌이 먼저 와 쓰러져 있던 움막을 찾아왔다. 둘은 부둥켜 한없이 울었다. 어렵게 화로에 불을 붙인 그들은 눈을 녹여 물을 마시며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 9시 눈은 그쳤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내려가고 있을 때 야크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야크 몰이꾼이 박정헌과 최강식을 발견하고 마을로 데려왔다. 마을 촌장과 야크꾼 가족들은 박정헌과 최강식을 극진하게 보살폈다. 야크꾼 딸이 박정헌이 작성한 메모지를 들고 구조를 요청하러 마을을 떠났다. 워낙 마을이 오지여서 그날 두 딸은 돌아오지 않았다.

촐라체 북벽 등반을 시작한 지 9일째 되는 1월 21일 오전 9시 박정헌과 최강식은 헬기소리를 들었다. 헬리콥터는 천천히 야크 목장에 내렸지만 네 명이 한꺼번에 탈 수 없어 일단 상처가 심한 최강식을 먼저 병원으로 후송했다. 헬기는 20분 후 박정헌을 구조해 루크라를 거쳐 카트만두 병원으로 향했다.

 
박정헌과 최강식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11 vs 19

박정헌·최강식은 히말라야에서 실종된 지 1주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촐라체 북벽을 동계에 단둘이서 3박 4일 만에 등정하는 놀라운 등반력을 보여줬지만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박정헌은 손가락 8개와 발가락 3개를, 최강식은 발가락 10개와 손가락 9개를 바쳤다. 두 산악인은 재활 훈련을 거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 명은 히말라야에서, 한 명은 교사로 바쁜 삶을 살고 있다. 경남산악연맹은 뛰어난 클라이머 두 명을 잃어야 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촐라체에서 생환한 최강식(왼쪽)과 박정헌. 1년 만에 촬영한 것이다.
2005년 체육발전 유공자 포상 전수식을 갖기 전 최강식 박명환 박정헌(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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